#청려문대 #엋문 학교 다니면서 그렇게 주목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가볍게 시작하고 끝낸 연애가 생각보다 잡음이...

학교 다니면서 그렇게 주목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가볍게 시작하고 끝낸 연애가 생각보다 잡음이 있었고, 그런 잡음 정도야 얼마든지 무시하면서 살 수 있었는데,
- 한달.
- 예?
- 우리 한달만 사귀어요.
요즘은 고등학생도 계약 연애 뭐 이런 걸 하냐?
연애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누가 나 좋다고 만나자고 했고, 친구로서 좋은 인연이었기에 한 번 연인으로 만나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애라는 게 생각보다 너무 시간을 많이 뺏었고, 같이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 왜, 제발. 내가 더 잘해줄게.
- ...아니, 네가 잘해줘도 내가 미안해서 안 된다니까.
- 괜찮아, 미안해도 돼. 응?
-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래서 회피. 그래, 회피가 답이었다.
결국 선택한 게 도서관. 아무리 언성을 높이려고 해도 높일 수 없고, 심각하게 떠드는 순간 그대로 쫓겨나는 공간이 아니던가.
오늘은 뭐 읽지. 슬슬 제목만으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것도 재밌었다. 장르도 제법 다양하게 골랐는데, 이번엔 가벼운 소설을 읽을까. 적당히 하나 골라서 도서관에서 자리 잡고 읽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수업 시작할 시간이었다.
대충 로맨스 소설. 이 정도면 금방 읽겠지. 문대는 얼른 빌려서 교실로 돌아갔다. 딱 종이 칠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다. 말을 걸 기회를 노리다가 포기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그렇게 조용히 있어줘라.
- ...어?
그러더니 힘없이 밖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었다. 책갈피라기엔 너무 얇은데? 이게 뭐지?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얼른 낚아채서 확인했다.
[신재현 사용 설명서]
이게 누군데? 적당히 책보다 작은 크기로 접혀서 펼치면 a5 사이즈 정도였다.
1. 말싸움 하려 하지 말것. 어차피 못 이김. 그냥 먼저 사과하거나 포기하는 게 나음.
2. 절대 귀찮게 하지 말것. 본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걸 싫어함.
...
- 종 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서있어, 빨리 앉아.
마침 선생님이 들어왔다.
사용 설명서고, 뭐고, 누군지도 모르니 다 읽고 반납하면 나중에 어떻게든 찾겠지. 문대는 그런 이상한 종이를 끼워두고, 책을 읽었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책 읽겠다며 챙겨서 얼른 도서관으로 사라지려는데,
- 아, 죄송합니다.
그러다가 딱 앞에서 오는 사람을 못 보고 부딪쳤다.
- 이거 난데?
- ...예?
문대는 그 사람을 제대로 보았다. 정확하게는 얼굴 한 번, 그 다음에 명찰 한 번.
[신재현]
미친.
- 난 신재현인데요?
- 그러니까 제가 쓴 거 아니라고요.
그래, 이 학교 책에서 발견되었으니 당연히 신재현이 여기 학생이겠지. 본인 이름이 쓰여있는 걸 누가 들고 있으니 당황할 수는 있겠지만, 억울하다며 문대가 어필하다가,
- 아뇨, 내거 아니에요.
어쩌라고, 네가 신재현이라면서.
- 예... 그래요. 제것도 아니거든요.
- 본인 책에서 나왔는데?
- 지금은 본인이 소유 중이니까.
아니, x발. 아니라고 하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거나, 그러면 누가 썼는지 알아내고 싶으니까 달라고 하던가. 이도저도 아닌데 냅다 내가 썼다는 듯이 굴면 어쩌라는 거야.
- 그러면 저 이후에 또 이 책 빌려가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이 쓴 거냐고 또 물으시게요? 그러시든가요.
- 결국 내가 처음 목격한 건 이 상황인데 내가 이러는 것도 당연하지 않아요?
- 진짜 ㅆ...!
참아. 욕하지 마. 딱 봐도 선배야.
[1. 말싸움 하려 하지 말것. 어차피 못 이김. 그냥 먼저 사과하거나 포기하는 게 나음.]
갑자기 머릿속을 탁 치고 지나갔다. 그러니까 분명 그렇게 쓰여 있었는데. 문대는 곧장 재현이 들고 있던 종이를 그냥 낚아채서 책 사이에 다시 끼웠다.
미련 없이 뒤로 돌아 도서관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 ...하!
가는 길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설명서 기가 막히네. 포기하니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책 다 읽으면 얼른 반납해야지.
그렇게 시간을 쪼개서 읽은 덕분에 겨우 다 읽고, 드디어 반납한다. 이 생각으로 얼른 도서관에 반납해야지, 하면서 점심 먹자마자 교실로 가서 책을 챙겼다. 이거 제대로 있지? 그 문제의 망할 설명서도 끼워두고 나가는데,
- ...대화 자체를 할 생각이 없다니까? 나 도서관 가야 해. 길 막지 마.
- 우리 좋았잖아.
- 그래, 좋은 친구.
진짜 또 시작이다, 내가 무슨 10년 넘게 연애하면서 결혼을 앞둔 성인도 아니고
- 왜? 나는 정말 그냥 친구였어?
-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서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했잖아. 내가 친구 이상으로 봐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 아니, 네가 괜찮다고 해서 해결될 거 아니라니까?
벌써 지나다니는 애들이 쟤네 또 저런다면서 수군거렸다. 제발. 이런 주목 너무 싫다. 세기의 사랑은 제발 너 혼자 해. 나 끼우지 말라고. 내가 x발 17살이야. 어? 나 학교 조용히 다니고 싶어.
계속 가버리려고 하니 확 팔뚝을 낚아챘는데 그대로 품에 안고 있던 책이 퍽 떨어졌다. 이러다가 크게 구겨지거나 찢어져서 손상되면 내 책임이라고, 문대가 황급하게 주워드는데,
- 미안, 이러려고 잡은 게 아닌데. 그,
- ...이게 뭐야? 신재현?
- 내놔. 그거 내거 아니야.
- 이게 대체 뭐야? 사용 설명서? 뭔데?
- 거짓말 하지 마. 내가 싫으면 차라리 싫다고 했어야지.
...난 분명히 친구로서만 좋다고, 몇 번을 말했던 것 같은데.
- 신재현이 누군데, 어? 누구냐니까?
- 나도 몰라!
진짜 저놈의 종이에 악귀라도 들렸냐고, 책 하나 잘못 빌렸다가 이게 무슨 꼴을 당하는 거야.
- 왜 나는 아니...!
- 신재현이 난데요.
갑자기 놈의 뒤에서 나타나 들고 있던 종이를 자연스럽게 채가는 재현이었다.
- 그, 그래서 사귄다고요?
꼴에 선배인 건 바로 알아봤는지 갑자기 존댓말하면서 묻는 모습이었다. 문대가 헛소리 그만하라면서 자제시키려고 하니, 갑자기 재현이 제게 어깨동무하면서,
- 예?
- 그러니까 그만 건드릴래요? 자꾸 내 이름 입에 올리는 것도 거슬리네.
그럼 이만. 그대로 벙진 상대를 놓치지 않고 문대의 몸까지 홱 돌려서 어깨동무를 끝까지 유지한 채 데리고 사라졌다. 문대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데 어이가 없었다.
- 아니,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 왜요.
- 제가 왜 갑자기 선배님이랑 사귀냐니까요?
- 목소리 너무 크면 들킬 것 같은데.
- 아니, 그게 무슨,
- 따지고 보면 내가 난감한 상황에서 구해줬는데.
- ...죄송한데 저 도움 요청한 적도 없거든요?
- 애초에 나서주길 바라지도 않았다니까?
- 말했잖아요. 나도 내 이름 나오는 거 거슬렸다니까.
...어쩌라고.
- 그래서 뭐 감사하다고 해드려요?
- 아까 그 친구는 전남친? 뭐, 귀찮게 구나봐요?
- 딱히 알 바 아닌 것 같은데요.
- 어차피 이미 뱉어버린 말이기도 하고, 내가 좀 도와줄 테니까,
- ...
- 한달.
- 예?
- 우리 한달만 사귀어요.
이게 뭔 개소리야?
- 미쳤어요? 제가 왜요?
- 나도 좀 애인 대행이 좀 필요해서요.
- 아니, 어쩌라고요.
- 후배님도 나 필요하잖아요.
- 아닌데요?
- 아까 누구 덕분에 빠져나왔어요.
물론 방관이라는 거 절대 좋지 못하다. 하지만 내가 먼저 손을 뻗는 게 아니면 제발 오지랖 좀 부리지 말아달라는 거다. 애초에 지금껏 잘 피하다가 이번에 한 번 잘못 걸린 건데 왜 멋대로 판단하냐고.
- 그게 무슨 상관,
- 이렇게 매달린 거 하루 이틀 아니죠? 일주일은 됐죠?
- ...
- 우리 가볍게 딱 도움만 받아요.
...어디가 가벼워. 그와중에 앞에 한 말들이 틀린 말은 아니라서 또 반박이 안 됐다.
- 나는 누구처럼 매달리지도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놔줄게요.
- ...그, 목적이 뭔데요?
- 뭐, 후배님이랑 비슷한 거죠.
문대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1. 말싸움 하려 하지 말것. 어차피 못 이김. 그냥 먼저 사과하거나 포기하는 게 나음.]
그래, x발. 그냥 포기하자.
- 그래요.
- 그 이상으로 뭐, 더 요구하거나 하면...!
- 안 한다니까요.
재현이 웃으면서 아까 낚아챘던 그 종이를 문대에게 돌려주었다.
- 앞으로 잘 부탁해요.
- 이건,
- 반납할 건데요?
- 네, 뭐. 반납하는 건 후배님 자유죠. 알아서 해요. 그러면 나중에 봐요.
먼저 사라지자, 문대는 종이를 들고 한숨을 쉬었다. 이게 진짜 뭐냐? 대체 뭐가 지나간 건지 하나도 모르겠네.
다음 날이었다. 문대는 사실 집에 가서도 얼떨떨했다. 나 그래서 그 사람이랑 진짜 사귀는 건가. 그런 생각에 자기 전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그러다가 딱 떠오른 한 가지 문제.
- ...
나 그 사람 번호가 없다. 그리고 몇 반인지도 모른다. 이름이 신재현인 것말고 아는 게 없다.
아침부터 이러한 상황때문에 그저 황당했다. 그래서 나 그 사람이랑 한 달동안 연애하는 거야, 뭐야. 그냥 우스갯소리로 말한 거고, 딱히 언제 보자는 이야기도 없이 나중에, 라면서 대충 흘렸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나? 오히려 그렇다면 좋은 거지.
망할 신재현 사용 설명서. 이거 어떻게 하지?
여차하면 점심시간에 한 번 만나볼까. 아니, 그런데 굳이 만날 필요가 있나?
- 문대야.
- 나 교무실 가야 해.
일단 저 미친 새끼는 좀 피해야 해. 다가오는 걸 어떻게든 피하면서 문대는 쉬는 시간마다 거의 운동하듯이 도망가며 대피했다. 학교에서 1년에 한 번 하는 소방 대피 훈련을 매 시간 하는 수준이었다.
- ...하.
음료수 하나 마시고 싶다는 것도 굳이 위층에 있는 자판기를 썼다. 대체 왜 1학년이 여기 와서 이러고 있나, 하는 선배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문대는 생각해 보면 치정극보다는 훨씬 낫다며 적당히 무시했다. 그리고 이게 교칙 위반도 아니니까.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 사이에 쏙 들어가 식사하는데
- 문대야.
그런데 냅다 제 맞은편에 앉아버리는 그놈의 구남친. 문대는 숟가락을 대충 쑤셔넣고 남은 건 어쩔 수 없다며 벌떡 일어났다.
이미 끝난 상황에 대화도 안 통하면서 피하지 말라면 어쩌라는 건지. 그냥 답정너가 아니던가.
- ...너, 제발 나 그만 좋아해.
살다 살다 내가 이런 대사를 내뱉을 줄이야. 인기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을 가졌어도
- 네가 이렇게 대놓고 피하지만 않았어도...!
그때 쫓아 일어나서 냅다 또 팔뚝을 붙잡았다. 강압적으로 나오는 모습도 굉장히 싫었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 미, 미안. 어떻게 하지? 나는 이러려는 게 아니었어!
- ...X발.
감정에 앞서서 무작정 붙잡은 탓에 들고 있던 급식판이 그대로 엎어졌다. 차라리 이걸 앞으로 쏟았으면 저놈한테 부어버리고 네가 먼저 잡지 않았냐고 능청 떨 수 있는데 이게 제 몸으로 뒤집어지면서
- 얼른 화장실 가자. 혹시 갈아입을 체육복 없으면 내가 빌려ㅈ...!
- 꺼져.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 하, 하지만,
- 네가 그랬다고, 너 때문에. 내가 제발 그만 집착하라고 했지.
- 너 이러다가,
- 이러다가 진짜 큰일나고 싶나 보네.
누군가 지켜보지 않고 끼어들었다.
교복 위로 크게 지도라도 그려진 것처럼 물들었는데 전혀 신경쓰지 않고 어깨를 잡고 제쪽으로 당기는 재현이었다.
- 묻어요, 다 묻는다고.
- 안 묻어요. 그리고 괜찮은데.
진짜 생긴 건 결벽증도 있어보이는데 정말로? 그리고 제 등짝은 오염되지 않은 것을 알았다. 뒤가 밀착했으니 정말 묻진 않겠구나.
- ...나도 모르는데요.
- 대, 대화를 하지도 않고!
- 잠수이별도 아니고 헤어지자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혼자 대화 안 끝났다고 매달리는 건,
- ...
- 추잡한 거 아닌가?
- 할말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있다고 해도 들어주진 않을 거지만.
- 하지만 선배님!
아예 말을 딱 자르고 재현은 바닥에 뒤집어진 급식판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 본인이 잘못했으니까 책임지고 치울 거죠?
- ...
- 가요, 후배님.
재현이 생긋 웃으며 문대를 데리고 사라졌다. 레드카펫을 밟는 배우처럼 지나가는 내내 시선이 쏟아졌다.
- 이거 빨아지긴 하나?
우선 교복 단추를 서둘러 풀고 냅다 세면대에 셔츠를 담갔다.
- ...진짜 개같네.
미안하면 체육복 내놓으라고 할 걸 그랬나.
양말도 벗고 슬리퍼는 대충 씻었다.
- ...
바지는 어떡하지, 이거는 벗을 수도 없고, 진짜 망할 새끼. 냄새라도 지우려고 어떻게든 비누칠하며 물을 손바닥에 담아 계속 흩뿌렸다. 물에 계속 담갔던 교복 셔츠 냄새를 킁킁 맡았다. 음식물 냄새는 좀 빠졌네. 마르면 다 날아가겠어.
- 예?
화장실로 뛰어오고 딱히 따라오지 않길래 교실로 간 줄 알았더니, 교실에서 돌아온 모양이었다. 체육복을 들고 와서 상하의가 다 젖고 양말까지 벗은 문대를 훑었다.
- 옷 다 벗어요.
- 네?
- 감기 걸려요.
- 그, 저, 안에 아무것도 안 입었어요!!!
- 알아요. 다 비치는 거 보이는데 모르겠어요?
- 예??
태연하게 받아치는 재현에 문대는 순간 자신이 이상한 줄 알았다. 황당함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 ...아뇨, 없는데요.
- 그런 것 같아서 들고 왔어요. 부끄러운 거면 들어가서 갈아입을래요?
재현은 더 이상 억지로 셔츠를 올리지 않고 한 발 물러나 문대에게 제 체육복을 건넸다.
- 크흠.
괜히 헛기침이 나왔다. 하마터면 냅다 맨몸을 공개할 뻔했잖아.
- 반팔 체육복을 안 챙기고 다녀서, 미안하네요.
- 아닙니다.
- 내 이너라도 벗어줄까요?
- 아뇨!
- 그, 내일 빨아서 돌려드리겠습니다.
어찌 됐든 신세를 졌다며, 문대가 아까처럼 또 허리를 크게 숙였다.
- 예?
- 아뇨, 그냥.
- ...
- 생각해 보니까 내 번호 모르죠?
- 아, 네.
- 핸드폰을 교실에 두고 와서, 전화 걸어두고 가서 저장할게요.
- 네, 편한대로 하세요.
- 뭐요?
- 선배님이 편하면 그래도 되고, 티내고 싶으면 자기야, 라고 해도 되고.
- 예?
- 우리 사귀잖아.
...그 한 달이라는 게 정말이긴 했구나.
[선배님❤]
...이게 맞냐?
- ...네, 뭐 감사합니다.
끝까지 다정하게 챙겨주니 문대도 떨떠름하더라도 받아주려고 노력했다.
- 사귀는 사이에 감사할 것 까지야.
- 크흡.
아, 적응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