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이면 신청려와 박문대는 아직 사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예전처럼 웬수새끼는 아닌…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음 신청려와...

신청려와 박문대는 이제 꼭 미션이라던가, 정보에 대한 용건이 아니더라도 종종 의미없는 연락을 나누곤 했는데 최근들어 신청려 상태가 영 이상했음
[요즘은 곡 안쓰냐?]

연애 감정이라던가, 사랑 같은 간질간질하고 애틋한 감정이라고 하자니 우리 상황의 특수성 때문에 착각했을수도 있고
마냥 편리함, 동질감이라기엔 박문대는 신청려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쏟고 있었음
[글쎄요, 딱히?]
뜬금없이 곡에 대해서 물어본 이유는, 제 나름의 같이 듀엣하지 않겠느냐는 어필이었음
[왜?]
[그냥 요즘은 관심이 안 가네요.]
사실 신청려가 이상해진 건, 오늘 뿐만이 아니었음
야, 너네 활동 이번에 왜 이렇게 짧아? 컨셉도 무난하고
그러니까 대상을 노렸다기 보다는 팬 서비스 차원으로 낸 노랜데 그렇게 열심히 활동 할 필요가 있냐는 거였음
박문대는 그 말에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음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성적에 초연했다고?
하하, 이럴 때도 있는거죠
연락만 해도 저따위니…박문대는 쯧, 혀를 차고는 신청려에게 전화를 걸었음
웬 일이에요, 먼저 전화를 다 걸고
너 무슨 일 있냐?
무슨 일?
상태가 이상하잖아, 너
아아…
저도 잘 모르겠는데…좀 피곤하네요
병원은?
음, 몸이 피곤한 건 아닌데…
박문대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신청려에 조금 답답해졌음
뭐야, 그냥 귀찮다는 거야?
뭐, 그래 니가 하기 싫다는데
...
그래도 너무 귀찮다는 티는 내지 마라, 말 나온다
제 눈에 보일 정도면 팬들 눈에도 보일테니 반은 정말 걱정되서, 또 반은 안 하던 짓을 하는 것에 답답해서 툭, 말을 뱉었음
신청려는 한참을 아무말도 없더니
언제나 제가 끊을 때까지 끊어지지 않던 전화였기에 박문대는 조금 당황해서 전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내려다봤음
설마 삐진건가?
[야]
[야야야]
혹시나 해서 문자를 보내봐도 답장은 없었음
박문대는 조금 한숨을 폭, 쉬고는 다시 문자를 보냈음
역시나 답장은 없었음
참나, 이 정도면 꽤 져 준 것 같은데 내가 너랑 연애하냐?
결국 박문대는 자꾸만 신경이 가는걸 애써 외면한 채 핸드폰을 내려놨음
문제는
[후배님, 혹시 재현이 형이랑 연락 돼요? - VTic 채율 선배님]
[혹시 오늘은 재현이 형 연락 없었어요? - VTic 채율 선배님]
…이런 연락이 요 며칠 계속 왔다는 거였음
처음엔 저도 문자를 씹혔으니
[저도 연락 안 한지 며칠 됐습니다.]
라고만 보낼 뿐이었음
하지만 며칠 내내 이런 연락이 오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음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야, 너 어디야]
[전화 받아라]
[아, 답장이라도 하던가]
[나 너네 집으로 간다]
하지만 신청려는 끝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음
이새끼 또 허튼 생각하는 거 아니야?
곧장 신청려의 집으로 향했지만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음
[선배님, 청려 선배님 연락 왔나요?]
[아니요… - VTic 신오 선배님]
그럼 콩이는 어쩌고, 이 새끼야
와중에 또 콩이는 챙겼구만
박문대는 걱정과 어이없음으로 열이 오르는 이마를 문지르며 현관문 앞에 쭈그려 앉았음
다시 한 번 신청려에게 전화를 걸어봐도…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X발
박문대는 멍하니 저와 신청려가 나누었던 문자를 쭉 훑어보았음
[뭐하냐]
[그냥 쉬고 있어요, 후배님은요?]
[안무 연습 중]
[늦었는데 열심히네요, 안 힘들어요?]
[맨날 하던건데 뭐가]
이게 한달 전 문자였음
또 최근엔
[후배님,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그랬겠지]
[그렇구나...]
이런 대화도 나눴었음
그때야 류건우 시절에는 아이돌 데뷔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으니 경험담으로 한 대답이었는데...이렇게 보니 뉘앙스가 이상했음
박문대는 뭔가 찝찝한 기분에 신청려와 나눈 모든 문자를 돌려봤음
[모니터링, 너는?]
[전 누워서 콩이 쓰다듬고 있어요, 후배님은 항상 일만 하네요]
[너도 그러잖아]
[전 요즘 잘 안해요, 이제 하는 의미를 모르겠어서]
이땐 더이상 피드백할 거리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 재수없다고 생각했지, 아마
[후배님]
[후배님?]
[잠이 안 와요]
[미안해요, 혹시 깨있나 해서]
음, 이런 적도 서너번 있군
박문대는 문자 내역을 두어번 더 훑어본 후에야 내려놨음
아무래도 얘…요즘 우울했나본데
[야, 신재현]
박문대는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내면서 왠지 모르게 씁쓸한 입맛을 다셨음
애초에 답장을 기대한 건 아닌지라 화가나는 건 아니었지만...박문대는 괜히 손끝만 움찔 거리다 다시 메세지를 토독토독, 작성하기 시작했음
[그동안 고생 많았다]
[뭐…나도 네가 미션 하던 걸 다 보진 못했지만]
[너네 멤버들한텐 대충 둘러댈테니까 쉬다 와라]
누군가 보았을 때 신청려의 인생은 성공이었을지 몰라도, 결국 신청려의 삶은 실패의 누적이었음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하고
그리고 또 실패하고
‘후배님, 너무 애쓰지 마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음
보통이라면 실패 또한 의미있는 평가와 경험이 되어야 할 것이 신청려에게 있어서는…
‘몇 번 째더라, 이제는 이름도 기억이 잘 안나는데…그런 멤버도 있었어요’
‘신기하네, 아예 기억도 안 나?’
평가나 재조명은 커녕,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었음
신청려에게 평생이었을 그 나날들은 이제는 한 줌 기억조차 되지 못했음
지금 대중들의 브이틱에 대한 평가, 나쁘지 않지
하지만…
‘완벽한 커리어, 안 온다고'
참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음
글쎄
[쉬는 건 쉬는 건데…]
박문대는 제가 신청려에게 갖고 있는 감정이 예전과 마냥 같지는 않다는 걸 일찍이 알고는 있었지만
납치 당했을 때의 제게 이런 생각을 들려주거든 ‘미친놈이랑 같이 지내더니 너도 돌았냐?’ 라고 할 게 분명했음
[그래도 아이돌, 계속 했으면 좋겠다.]
젠장
전적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좀 걱정은 되는데, 더 이상 제 선에서 찾을 방도가 없기 때문에 박문대는 발걸음을 옮...
-지이잉
…신청려에게 드디어 답장이 왔음
박문대는 조금 급하게 다시 핸드폰을 확인했음
미친놈
박문대는 헛웃음을 짓고는 곧장 신청려에게 전화를 걸었음
어디야
올 거에요?
그래, 지금 갈테니까
…
그리 오랫동안 못 들은 것도 아닌데, 활동기가 안 맞거나 제가 피할 적엔 더 오랫동안 듣지 못한 적도 있는데
신청려의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건 처음이었음
택시를 타러 뛰쳐나오니 어느덧 하늘은 주황빛으로 무릇 익어있었음
길이 험해요, 도착하면 데리러...
지랄말고 끊지마
...
내가 너한테 갈때까지 내 전화 끊지 말라고
그리고 박문대는 잡히지 않는 택시에 큰길가로 달렸음
어느덧 전화 너머로 어렴풋이 풀밟는 소리가 들릴 즈음 신청려가 시끄러운 침묵을 깼음
내렸어요?
하, 윽…어
갈게요
허억, 됐고, 거기 그대로 있어
길도 모르면서 곧장 뛰기 시작한 건지
강가 앞의 벤치에 앉아 있던 신청려는 그것에 조금 피식 웃으며 슬슬 박문대를 데리러 몸을 일으켰음
그리고 한 발짝, 몸을 돌리며 발을 내딛었는데...
너, 허억, 그대로 있으라고 그랬지
...
꼭 거짓말 같게도, 저 멀리서 박문대가 땀 범벅인 얼굴로
하늘도 주황빛이고, 그런 하늘을 담은 강도 주황빛, 무르익은 갈대밭도…
신청려는 그 사이에 서있는 박문대를 멍하니 바라봤음
…길도 모르면서 어떻게 왔어요?
앞에 이정표는 폼이냐?
아직도 사납게 숨을 내쉬는 박문대가 갈대를 헤치며 신청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음
박문대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는 멍하니 서있는 신청려의 손목을 잡아챘음
후우, 야
…네
가출은 끝났냐?
가출…제가 그런 말을 들을 나이인가, 잠시 곱씹던 신청려는
애초에 그냥 좀 답답해서 홧김에 잠수를 탄 것 뿐이었고…
애초에 그조차도 제가 평소에 하던 짓은 아니었으나, 큰 의미가 있어 한 짓은 아니었음
하지만 박문대는 신청려의 손목을 쉽게 놓아주지 못했음
너 궁금하지, 이제 이 짓거리를 왜 하는지?
신청려는 기분이 나빴음
후배님이 거슬린지는 꽤 된 일이었지만
이제 미션도 끝났겠다, 잘하든 못하든 죽지도 않고
...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라니까 살기는 하겠는데, 애초에 미션이 없었으면 너가 아이돌을 했을까 싶고
저기, 후배님
이제 정말 해가 저물 때가 되었는지 하늘은 주황빛을 넘어서 불그스름해지기 시작했음
신청려의 눈동자와 머리칼이 유독 까만 탓일까, 그 붉은 빛이 온전히 반사됐음
허무하지? 그래서 하기 싫잖아
...
그래도 해
신청려는 기분 나쁜 감정이 더욱 짙…기분이 나쁜 건가?
나도 미션 아니었으면 아이돌 안 했어
…근데 왜
그래도 해보니까 좋더라
조금 코 끝이 시큰거리고 속이 울렁거렸음
그리고 그건 박문대도 마찬가지였음
미션이 없더라도, 계속 하고 싶다고
누구의 눈에서 떨어졌는지 모를 눈물 한 방울이 갈대 속으로 숨었음
그렇게 허무하고 지치면 내가 알아줄게
신청려의 고개가 점점 박문대의 어깨로 묻어졌음
이제는 박문대가 신청려의 손목을 붙잡은건지
미션이니, 회귀니…그 딴 복잡한건 나랑만 하고
...
좀 단순하게 살라고, 이제
무대, 춤, 팬들…
너도 좋아하잖아
비현실적으로 붉었던 하늘은 결국 보랏빛으로, 남빛으로 캄캄해졌음
슬슬 날이 쌀쌀해졌고
이제 돌아가자
네
차는?
택시타고 왔어요, 길이 험하다니까요
계속 서로를 붙잡은 채, 험한 길을 헤쳐 내려왔음
뒤늦게 연락이 닿은 브이틱의 멤버들이 반쯤 울며 곧장 신청려의
한바탕 시끄러운 소동이 지나가고
…나도 이제 간다
후배님
오랜만에 본 콩이를 쓰다듬으며 신청려가 저를 붙잡았음
왜?
아까 후배님이 그랬죠?
…
박문대는 문득 아까 붉은빛이 반사되고 감정이 가득 일렁이던 신청려 눈빛이 다시금 겹쳐보였음
콩이만 쓰다듬던 신청려의 손이 제게 뻗어왔고
그럼, 저랑 조금만 더 복잡해질래요?
사귀지는 않지만 마냥 예전처럼 웬수새끼는 아닌…그런 사이에서 더 복잡해지는 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박문대는 그 손 위에 제 손을 얹었음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