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아, 너무 긴장하지 말고. 하던대로만 하면 되니까." "으, 응." "그리고...맘처럼 잘 안 돼도 너무 실망하지...

"으, 응."
"그리고...맘처럼 잘 안 돼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그냥 재밌게 하고 오면 돼, 알았지?"
"아, 알았어요...나 갈...갈게."
"그래, 우리 아들 화이팅!"
그냥 재밌게만 하면 돼. 너무 부담 갖지 마.
하지만 부담을 갖지 말라는 말은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선아현은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평생동안 아무것도 해내지 못해도 부모님은 그를 사랑할 것을 알았다. 꿈을 이루지 못해도, 친구를 사귀지 못해도, 사회생활을 해내지 못해도. 하지만 그런 한심한 스스로의 모습을 사랑할 자신이 선아현에게는 없었다.
쭈삣쭈삣 건물 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뱃속이 꼬여와서 머릿 속에서 상담사의 말을 되뇌이며 심호흡을 했다.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어.
"야, 쟤 좀 봐. 대박 잘생겼어."
"헐 어디 연습생이야? 아주사 망해서 경쟁률 별로일 거라더니."
"와, 저렇게 생겼으면 숨만 쉬어도 표 좀 받겠네."
-예쁘게 생겨서 좋겠다? 숨만 쉬어도 선생님이 예뻐하잖아.
나에 대한 얘기가...아닐거야.
"참가자세요?"
네.
목구멍이 꽉 조여든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서, 서서서서, 선, 선아현이요..."
"네?"
망했다. 시작부터 망했어. 최근엔 이 정도로 더듬지는 않았는데.
머저리같이 보는 눈빛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건네주는 이름표를 받아들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이대로라면 모두가 자신이 말더듬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든든하게 먹고 가야지, 라며 차려주신 음식을 그대로 토해버렸다. 변기에 고개를 박고 잠시 헐떡거리던 아현이 더 이상 나오는 게 없자 고개를 들고 생리적으로 나온 눈물을 슥 훔쳤다.
괜찮아. 난 원래 속이 가벼울 때 더 잘했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아드님한테는 재능이 있어요.
두각을 드러낼 수록 기대는 커졌고, 늘 즐겁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긴장감에 변기를 부여잡고
선아현은 차분하게 일어나 세면대로 나와 손을 씻었다. 아무도 없었으면 했는데, 세면대에 누군가 있었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도록 내리깔고 손을 씻는데 집중했다. 따뜻한 물로 씻어도 손끝이 차가웠다.
"저기...괜찮으세요?"
"아..."
"아, 괜찮, 괜찮..."
동정일까?
안쓰럽게 쳐다보는 표정에 목구멍이 다시 조여들었다. 안돼, 위축되지 마. 저 사람도 나한테 관심이 없어, 날 싫어하지 않아.
기껏 다잡은 자신감이 설탕과자처럼
"괜찮아요, 아현 군! 앞으로 잘하면 되니까!"
방금은 썩 잘하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차라리 앞의 참가자들한테처럼 대놓고 뼈아픈 지적을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상냥한 응원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내가...예쁘게 생겨서. 그리고 장애가 있어서.
도망치지 않았어. 머릿 속이 하얘졌어도, 끝까지 부르고 끝까지 췄어. 감추지 않고 드러냈어. 장애는 내가 잘못한 게 아니고 그냥 내 모습이니까.
되뇌이며 자리로 올라가는데 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정말? 성서라도 되는 것처럼 되뇌이던 메세지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아현이 경험해온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경멸, 무시, 조롱, 흥미, 동정. 부정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으려 애를 써봤지만, 어찌됐든 시선은 늘 느껴졌다.
그래서 뭐. 쳐다보면 어쩔...건데. 평생을 숨어서 살 수는 없다. 그러니까 여기 나온 거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견디고, 평가받게 되는 곳. 적어도 여기선 나만...평가받는 건 아니니까.
아현은 속으로 되뇌었다.
떨지 말고, 더듬지 말고. 안녕하세요. 옆자리 사람한테, 자연스럽게. 주눅들지 말고. 내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나를 싫어하지 않으..아니, 싫어해도 괜찮으니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니까, 싫어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무슨 반응이 나와도, 감당할 수 있어.
아현은 꽉 막힌 목구멍에서 목소리를 끄집어내려고 애썼다. 동정 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나아갈 수 없다. 미움 받는 것도 익숙해져야지, 어쩔 수 없다. 옆자리와 인사도 나누지 못해서는 아주사에 나가겠다고 고집부린 의미가 없다.
옆자리와 눈이 마주쳤다. 아현이 얼어붙었다.
옆자리의 참가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게...다였다.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아현 씨, 사람들은 생각보다 아현 씨한테 관심이 없어요.
두근두근, 적당한 박동에
시선이야...항상, 느껴지겠지. 박문대 참가자도 분명 지켜보았을 것이다. 선아현의 무대를. 그도 자신의 무대를 지켜보았고, 자신이 옆자리에 앉자 인사를 했다. 그냥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다. 무시도 경멸도 동정도 없었다.
두근두근.
여전히 긴장감에 뱃속이 간지러웠으나, 도망치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왠지 더 이상, 꽂히는 시선이 전처럼 두렵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