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틱엋건 보고싶다. 몇번째인지 모를 실패. 또다시 새로운 밤을 맞이하게 된 청려... 아니, 신재현은 이젠 화조차도...

몇번째인지 모를 실패. 또다시 새로운 밤을 맞이하게 된 청려... 아니, 신재현은 이젠 화조차도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각의 회로를 연결했음. 죽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생각에서 한치의 어긋남없이, 그는 실패의 원인을 떠올렸음. 아, 빌어먹을 메인보컬.
"류건우..."
이왕이면 다신 마주하지 않길 바랐는데.
그렇게 그를 데리고 데뷔하고, 다른 모든 요소 때문에 실패하는 중에도 그는 굳건했음.
...그게 문제였지.
-형.
-...어.
-저 형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게 있어요.
류건우의 표정이 조금 미묘했음. 신재현은 그가 혹시 착각하지 않도록 말을 이었음.
-내가 미친 것 같아도, 끝까지 들어주기로 약속해요.
뭐라고 말해야할지, 본인도 모르는 것 같았음. 꼭 미쳐버린 환자를 눈앞에 둔 의사같기도 했고, 거지를 동정하며 지나치는 사람같기도 했음. 그는 뒤늦게서야 자신이 너무 허무맹랑한 소리를 잔뜩 흥분해서 털어놓았음을 깨달았음. 처음으로 비밀을 털어놓은 소감은 그랬음.
-아무튼, 네 이야기는 알겠다. 대충 이해했어.
-당신이 어떻게요?
-...꼭 겪어봐야 이해할 수 있는건 아니잖아. 네 말의 요지도 알겠다.내가.... 널... 하는, 건... 어떻게든 해볼게.
-신청려.
-네.
-다음 '기회'는 언제야?
-...네?
순간 신재현의 등골이 오싹하게 식었음.
-부탁이 있어.
-그런걸 바라는건 아니다.
류건우는 등을 보이고 앉아있어 신재현에겐 그가 어떤 표정을 하는지 보이지 않았음.
-너는 내가 무수한 과거에서, 한번도 변하지 않고 너를 좋아했다고 했지.
-...
-생각해봤는데, 너를 좋아하지 않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다음에도 나는 너를 만나게 되면 너를 좋아할 것 같아. 네가 어떤 모습이든.
이미 무수한 증거가 있어 반박할 수 없는 가설을, 류건우는 확신처럼 말했음.
-...네?
-네가 불편하다며.
그 날, 자신의 마음을 거부하는 신재현의 모습에 류건우는 충격받았음. 너는 몇번이고 언제고 이어지는 내 마음을 이렇게나 불편해했구나. 언제나 냉정하고 합리적인 신재현에게서 처음 보는 강렬한 거부감에 류건우는 상처입었음.
-...형.
-내가 없는 브이틱으로 활동해줘. 나 지금 탈퇴선언하는거야.
류건우는 제법 농담처럼 말했지만, 신재현은 그걸 농담처럼 여기기 힘들었음.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음.
-...알겠어요. 그렇게 해요.
-미안하다.
떠나가는 류건우를 보며 신재현도 똑같이 웃었음. 대체 뭐가 미안한건데. 그런 말을 해야할건 나인데.
"이 친구는 류건우다."
"안녕하십니까."
류건우는 신재현의 예상대로 빠르게 클래스를 이동했음. 보컬 트레이너가 강한 지지자가 되었고, 댄스 트레이너는 반대하지 않았음. 류건우는 연습생 사이에서 묘한 적대감과 견제를 받으며 상위 클래스에 입적했음.
청려는 아주 오랜만에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음.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으나, 류건우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음.
"응. 너는..."
"전 신재현이에요."
"아."
류건우는 이미 청려를 알고 있는 눈치였음.
"소문 많이 들었어."
"춤 잘 춘다던데. 혹시 괜찮으면 가끔 물어봐도 될까."
"당연하죠. 언제든 물어봐줘요."
청려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 않았던지 류건우는 희미하게 웃었음. 그런 작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오랜만에 본 청려는 아주 새삼스럽게, 그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음.
"힘내봐요."
"어어, 너도."
이젠 흔적도 남지 않은 과거가 아주 잠시 그리워졌음.
데뷔조는 청려의 입김대로 꾸려졌음. 실력, 외모, 인성 어느 하나 그 어느때보다 완벽에 가까운.
부스를 나온 류건우가 자연스럽게 청려가 내민 물통을 받아 옆에 앉았음. 긴장이 조금 풀린 듯 신재현에게 조금 기대는 무게가 느껴졌음. 딱히 의식하고 한 행동은 아닌지 본인은 아주 태연했는데, 고작 그게 뭐라고 청려는 멈칫 행동을 끊고 자세를 굳혔음.
"음... 형한테 필요한 팁 같지는 않은데요?"
둘러말한 칭찬에 기분이 조금 좋아진 듯 류건우가 피식 웃었음. 그는 쩔쩔매며 마이크 앞에 선 채율을 빤히 바라보며 청려에게 조금 더 기대왔음. 바짝 붙을 때마다 묘한 향이 났음.
"하다보면 익숙해지겠죠."
"오늘 정도는 고기 먹일까."
"형이 원한다면요. 대신 내일부턴 빡세게 관리시킬거예요."
"어련하시겠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은근히 화색을 비쳤다 시무룩해졌다가를 반복하는 동생들의 얼굴을 본건지 류건우가 웃음을 터뜨렸음.
브이틱은 어느때보다 완벽했음. 몇번이고 검증되었던 류건우와, 그동안 고르고 골랐던 멤버들의 합은 강한 시너지를 냈음. 많은 과거 중에서도 가장 큰 반응을 불러 일으키며 브이틱은 순항했음.
"뭘 그렇게 생각하냐. 스케줄 가게 나와라."
"잠시 생각 좀. 금방 나갈게요."
청려가 다시 류건우를 데리고 오게 된 데에도 사정은 있었음. 그때, 류건우와 마지막 활동을 하고 헤어진 이후.
그리고 그 소원은 이루어졌음. 이번의 삶에서 류건우는 도통 청려를 사랑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음. 류건우에게 청려는 여전히 아끼는 동생이고 함께하는 동료이자 믿음직한 파트너였음.
"청려 형."
그런 청려에게 주단이 말했음.
"뭐지."
주단은 청려의 시선을 따라 연습실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음.
"혹시 건우 형을 좋아하시나요. 요즘 형이 건우 형의 기호와 반응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서요."
청려의 시선이 빙글 돌아왔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