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한국사람. 나도 한국어 해요." 류건우는 고개를 들어 제게 말을 건 남자를 응시했다. 그는 자동차 아래서 막...

류건우는 고개를 들어 제게 말을 건 남자를 응시했다. 그는 자동차 아래서 막 기어나와 온 몸이 기름범벅이었는데, 눈이 마주치면 해사하게 웃을 줄 아는 남자였다.
"아, 네."
"혹시 여행 왔어요?"
류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그럴줄 알았다고 답했다.
"차는 금방 고쳐요. 심심한데 말 상대나 해주면 안돼요?"
머쓱하게 서서 휴대폰이나 만지작대던 류건우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신나서 노래를 흥얼이기 시작했다.
"여행 어디 가는 중이에요? 오늘 머물 곳은 있어요?"
"시내로 나가려고요. 일정은 정한게 없어서... 일단 시내 호텔에서 하루 묵을 생각입니다."
"oh, 그것 참 좋은 생각인데요."
"하지만 나라면 다른 수단을 생각해보겠어요. 이 주변 시내의 호텔은 죄다 별로거든요."
"특별히 추천해주실 방법이라도?"
남자는 턱을 쓰다듬더니 씩 웃었다.
"혹시 가지고 있는 한국음식 있어요? 그걸 내게 좀 나눠주면 하룻밤 재워줄게요."
"조심성이 없네요."
"그렇습니까."
"뭘 믿고 내 제안을 수락했는지 궁금해요."
류건우는 핸들을 두드렸다.
"제가 그 쪽, 관심 있었거든요."
"아하. 역시 내 팬?"
"...팬까지는 아니고."
"나 남자 팬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요. 이거, 이런 차림이라 좀 미안한걸요?"
"미안할 필요까지는..."
솔직히, 기름투성이 작업복 마저도 무대 위의 연출처럼 보이는 남자였다.
"사실, 나도 당신 알아요."
"..."
"언제나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찾아왔었죠? 많은 팬들 사이에서 당신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어요."
남자는 웃음을 지었다. 어딘가 즐거워보였다.
"혹시나해서 말을 걸었는데 모르는 척 해서 조금 헷갈렸어요."
"맙소사, 그건, 정말 틀린 얘기네요. 내 팬이 날 알아봐주는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딨다고요. 그것도 이런 운명적인 만남 앞에서."
"...팬은 아니고."
"아무튼, 하려던 말은 그거예요. 미국에서 남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것. 남들한텐 제게 한것처럼 굴어주지 말아요."
"물론 당신이 나의 팬이라 내 제안을 수락했겠지만요. 솔직히, 팬을 내 집에 들여본 적은 없어 좀 긴장되거든요."
"불편하시다면 지금이라도."
"No. 그건 아니고요. 당신에게 궁금한게 몇가지 있어요. 괜찮다면 얘기 나누고 싶은데요."
"혹시 술 잘해요? 집에 와인 있는데."
"좋아합니다."
"Great."
남자는 한치의 거부감 없이 류건우를 제 집에 들였다. 그는 솜씨좋게 치킨스프를 만들었고, 류건우는 한국에서 가져온 반찬과 고추장튜브를 아낌없이 썼다. 물론 컵라면도. 중구난방인 안주를 저녁삼아 둘은 와인을 뜯었다.
"아직도 나를 좋아하나요?"
그건 여지껏 그가 건넸던 많은 물음과 달리 약간의 의기소침함과, 피로를 담은 물음이었다. 그에게서 빠져나가려 시도하던 류건우가 일순 멈칫하는 순간 남자가 그를 잔뜩 끌어안았다.
"당신이 좋아한건 나예요, 그렇죠?"
"나를 좋아하고 있어요?"
류건우는 답했다.
"네."
"아직도?"
"아직도..."
"이것도 팬서비스라기엔, 아이돌스럽진 않죠?"
"내 꿈 꿔요."
그 한마디야말로, 류건우가 받은 두어번의 입맞춤보다 농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