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넥타르 없이 18일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몸은 얼마나 종잇장 같을까. 차분히 생각해보자. 그걸 알면 멤버들의 이...

차분히 생각해보자. 그걸 알면 멤버들의 이 과보호도, 짜증날 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응.
"어, 문대 그거 이리 줘."
500미리 생수병 하나보다 무거운 건 절대 들지 못하게 하고.
"쉬어요! Break time!"
"...전 괜찮은데요."
"제, 제가 안 괜찮습니다! 저는 쉬고 싶습니다!"
중환자 하나 달고 가듯이, 모든 일에 천천히 느릿느릿. 갑갑해 미치겠지만, 다들 이러고 있으면 이게 상식이고 내가 비상식인 거겠지.
"저기, 여러분. 저 완전히 다 나았다잖아요. 의학적 소견이 그렇다잖아요. 나 완전 정상인이라니까? 활동 쌉가능이라니까?"
"알지알지~ 그래서 활동 하고 있잖아~"
"그냥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자는 거지.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
그래서 그냥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래, 누워있는 꼴만 보름 넘게 본 애들이니 그럴 수 있지. 그럼 눈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박문대는 멀쩡하다는 거.
"문대문대 괜찮아? 안색이 안좋은데."
"완전 멀쩡해."
진짜, 진짜로. 어제까지는 완전 멀쩡했다.
어제도, 그제도, 그 전날도. 아아무 스케쥴 없이 연습만 할 때는 멀쩡하고 기운이 남아돌아 추가연습까지 몰래 할 정도였는데.
"오랜만이라 긴장돼서 그래."
욱신욱신. 머리가 아픈 게 좀 짜증났지만 다행히 목이 붓거나 하진 않았다. 아아. 목소리 멀쩡하고, 기침 없고, 콧물 없고. 그냥 두통에 살짝 몸이 무거운 정도?
그래도 오랜만에 무대를 소화하려는데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 건 좀 아쉬웠다. 바쿠스가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뭐, 그래봤자 딱 두 곡인데. 생방송처럼 대기 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돌발 변수도 없을 거고.
"허억...헉, 후우...헥,"
무대를 과소평가했다.
"문대야, 물."
"감사..."
연습실에서처럼 아무때나 드러누워 쉴 수 없다는 점을 간과했다. 조명이 뜨거워서 내내 땀이 죽죽 흘러내린다는 점도.
그 모든 요소들로 체력이 쪽쪽 빨려 벌써 바닥을 드러냈는지 눈앞이 어찔어찔 하고 있었다.
"아니, 괜찮아요. 그냥 숨 찬 거예요."
단호하게 대답부터 하고 봤다. 물 마시고 잠깐 숨돌리면 괜찮아지겠지. 안 그래도 무조건 누워 있어야 한다, 쉬어야 한다 유난 떠는 애들인데. 딱 두 곡 녹화하는 스케쥴도 제대로 소화 못하면 앞으로 뭔들 하게 둘 리가 없다.
"테스타, 한번만 더 갈게요!"
"네!"
이런. 목덜미에 흐르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좀 메슥거리는데.
그래도 두 곡 트랜지션까지 다 합쳐봤자 십분도 안되지. 딱 십분만 더 버텼다가 드러눕자. 십분 순식간에 지나간다.
손발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일단 안간힘 쥐어짜고 있으니 맞게 움직이고 있길 바랄 뿐이었다.
Dreams can be horrible
그래도 지금은 아닐 테니
하씨. 이제는 애매한 게 아니라 확실히 아픈 게 맞는 거 같애.
지금 불러봐 그 이름
씨발, 노래가 왜 이렇게 길어.
참을 수 없는 잠이 쏟아지듯이 자꾸 몸이 늘어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중에 휘청, 다리가 한 번 풀렸다.
Welcome, welcome
이건 너를 부르는 소리
방긋방긋 웃어야하는 노래는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눈깔이 다소 풀려있어도 어떻게 뇌쇄적인 눈빛으로 선해해주면 안될까...
Call me
카메라의 빨간불이 아직 안꺼졌는데 어질, 하며 붕 뜨는 느낌에 황급히 뒤돌았다. 됐어, 다 됐어. 숨이 차 터질 것 같은 목구멍에서 피맛이 나고, 입에 자꾸 침이 고였다. 으윽. 안좋은 예감에 간절히 빌었다. 무대에만 토하지 말자, 제발.
...대야! 박문...
아, 젠장. 망했다.
한바탕 소동이 일게 분명해 바로 괜찮다고 안심시켜주려고 했으나 의사와는 반대로 시야도, 소리도 급속히 흐려지며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친 시선에 정신 놓기 전과 동일한 한마디가 머리를 스쳤다.
"누워 있어. 약 들어가는 중이야."
반사적으로 일으키려던 몸을 가볍게 누르는 손길에 그냥 다시 누워버렸다. 어차피, 이제야 느낀 거지만, 몸도 아직 무거웠다.
그나마 가장 대화가 통할만한 놈에 시선을 던지고 물었다.
"녹화는..."
"녹화? 잘 끝났지, 걱정 말어. 누구누구씨가 쓰러질 지언정 곡 끝날때까지는 정신 꽉 붙잡고 있어 주셔서. 대단한 프로 정신이야, 정말."
...잘못 골랐다. 얘 또 이러네.
"너는...하. 아니다. 청우형이랑 얘기해."
류청우랑? 뭘?
그러나 멤버들은 그새 뭔가 얘기된 게 있는지 다들 류청우를 한번씩 쳐다보더니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괜히 무거운 분위기를 한 번 띄워보려는 듯 주먹 쥐어보이며 작게 외친 차유진을 끝으로 다들 나가버리고 류청우와 나만 남았다.
어...이거 그러니까, 문제아가 리더한테 혼나는 그런 그림인가...?
내려다보는 류청우를 누워서 올려다보자니 무시무시하게 위압적이었다. 은근 쫄리네. 그래도 어린...나보다 어린앤데...
쫄아있는 기색이 (자존심 상하게시리) 보였던지 류청우가 픽 웃더니 손을 뻗어 머리를 가볍게 흐트러뜨렸다.
"뭘 또 그렇게 쫄아있어."
선제사과로 광명찾자.
"잘못한 건 알아?"
류청우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높이가 낮아지니 그나마 맘이 조금 편해졌다.
"컨디션 관리를...못해서...다들 놀라게..."
근데 좀 억울하긴 하다. 요새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는데. 이 이상 뭘 어떻게 했어야...
그러게나 말이다.
그럼 대체 왜 이 면담이 성사된 건지 눈만 굴리고 있었다.
"문대야. 사람은 멀쩡하다가 갑자기 쓰러지진 않잖아. 오늘 계속 몸이 안 좋았을 거야, 그렇지? 너 오늘 누구한테 그렇게 얘기한 적 있어?"
"쓰러질..정도로 안 좋은 건, 정말 막판에...그 전엔, 진짜 괜찮았는...데요."
떠듬떠듬 항변하는데 무서울 정도로 똑바로 바라본다.
"당장 쓰러질 것 같은 게 아니면 다 괜찮은 거야?"
"...죄송해요."
"사과를 받고 싶은 게 아니라...속상해서 그래."
"왜, 동물들은 아픈 데가 있으면 그렇게 숨긴다잖아. 약점이 될까봐, 경계 하느라. 문대 네가 우리를...충분히는 못 믿는건가 싶어서.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을 만큼..."
"아니요!"
이게 대체 뭔 소리래. 뭔 말도 안되는 방향으로
"그런 게 아니고...오히려, 다들 너무 걱정들 해 주고 위해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괜히, 별 거 아닌 일로 말 꺼냈다가 쓸데없이..."
"쓸데 없는 걱정이 어딨어. 건강 문젠데."
"그...쓸데 없다기 보다는"
생각을 거치지 않고 말이 흘러나오자니 횡설수설했다.
"못하게 할까 봐?"
치고 들어온 말에 순간적으로 답을 못하고 굳어버렸다.
긍정한 꼴이 되어버렸다.
입을 벌렸다 그냥 다물고 입술만 핥는데 류청우가 작은 한숨을 쉬었다.
"문대야. 우린 같은 팀이잖아. 널 도와주려는 거지, 방해하려는 게 아냐."
조곤조곤, 일부러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며 말을 이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뭐 반박할 수도 없네.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사유는, 팀에 공유해야 대책을 짜겠지. 이해했다. 그동안은 바쿠스에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 일에도 영향 끼칠 걱정 없이 앓고 지나가면 되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냥 나 개인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팀 차원의 퍼포먼스에 영향 끼치는 일인데. 앞으로 상태 안좋으면 재깍재깍 얘기 할게요."
수긍하고 들어갔는데도 류청우는 왠지 모르게 좀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게...아니, 그래. 바로바로 얘기해 줘. 뭐라도 도와줄 수 있게. 그러면 돼."
빨리도 물어본다. 딱히 물어봐주길 원한 건 아닌데, 면담이 끝났다는 게 기뻐서 밝게 대답했다.
"네, 뭐...좀 누워있으니까 멀쩡한 데요."
"애들 밖에서 애타겠다. 들어오라 할게?"
"네. 아, 근데요."
"저 진짜, 오늘 무대 하느라 무리해서 아픈, 뭐 그런 거 아니거든요...사실 하기 전부터, 아침부터 컨디션 안좋았거든요. 딱 오늘만요. 어제까지 막 삼십번씩 해도 멀쩡한 거 보셨죠?"
분명 무조건 못하게 하는 거 아니라고 네 입으로 얘기했다.
류청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대꾸했다.
"잘 모르겠네, 분명 무대 전엔 멀쩡하다 그랬는데. 그러니까 앞으로 셀프 리포트에 대한 신뢰를 좀 회복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