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ㅆ...!" 젠장.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새파랗게 질린 청려의 눈빛을 보고 X됐음을 직감했다. 쿠당탕!...

젠장.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새파랗게 질린 청려의 눈빛을 보고 X됐음을 직감했다.
쿠당탕!
"청려씨!!"
"문대씨!"
"청려씨! 청려씨, 괜찮아요?"
"문대씨, 문대씨? 제 말 들려요, 문대씨?"
"119 불러야 하는 거 아냐?"
잠깐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온 듯했다. 누군가 몸을 주무르며 계속 부르는 걸 보니 오래 기절했던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짧은 새 긴장했는지 온몸에 쥐가 난 듯 아팠고, 심장도 거세게 뛰었지만, 괜찮았다. 멀쩡했다.
"괜찮..습니다."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며 말하다가 멈칫했다.
"어..."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내어보았다가, 소름이 돋았다.
"청려씨. 어디 아파요? 어디요."
"아니...아니요, 괜찮, 습니다."
정말 괜찮은지 확인해보려고 조심스레 일어서는 와중에도 혼란스러웠다.
X발. 이건 뭐 하자는 짓이지.
청려의 몸이었다.
박문대...아니, 청려가 조용한 2인 병실의 적막을 깼다. 둘 다 잠시나마 의식을 잃었었기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병실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각자 1인실을 쓸 수도 있었으나, 서로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기에 2인실을 쓰겠다고 했다.
언제 누가 들을 지도 모르니 호칭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려가 2절에서 나왔어야 할 공중으로 힘차게 도약하는 안무를 1절에서 들고나온 건 확실히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덮친 쪽은 나니까."
그것도 매일 거울에서 보던 얼굴로 듣자니 더 이상했다.
"위험한 안무를 할 때는 다들 제대로 전달받은 건지 확인했어야 하는 건데. 요즘 좀 빠져가지고."
왜 본인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지가 무슨 책임자인가. 똑같이 출연자였던 주제에.
그것도 삐쩍 말라서는 창백한 낯짝을 하고 저러고 있으니 더 같잖았...어라, 이건 제 얼굴에 침 뱉기인가. 아니 근데 내가 평소 저 정도인가? 아니지? 지금 방금 사고나고 놀라서 저 꼴인거지?
"그건 그래요."
청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대씨 몸이 좀 약하네요. 그거 좀 부딪혔다고 발목 삐고 온몸이 아프고 계속 머리 아프고."
"난 아마 괜찮을텐데."
그건 그랬다. 이놈 몸뚱이는 아주 유연하고 튼튼한 모양이었다. 긴장했던 탓에 몸이 살짝 삐걱거리는 감은 있었지만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다.
"호칭 조심해주시죠, 그 몸 쓰는 동안은."
누가 듣고 테스타 박문대, 대선배 브이틱 청려를 후배 취급?!하며 어그로를 널리 퍼뜨리면 어떡하려고.
"네, 선배님."
그렇다고 바로 저러며 생긋 웃는 것도 불쾌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사근사근 어수룩한 후배처럼 묻는 건 더 불쾌했다. 너는 강아지 캐릭터 안 어울려, 이 음흉한 새끼야.
[!돌발! 상태이상: 이렇게 된 김에 역지사지.
서로 상대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해보자.
성공시: 원상태로의 복귀.
제한시간: 없음.]
이딴 웃기지도 않는 메세지가 떴기 때문이다.
상태창까지는 몰라도, 엿같은 시스템의 존재는 아는 녀석이니 대충 해야될 일만 얘기하면 될 듯 했다.
"서로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해야 된대요."
"이미 이해하는데?"
"아닐 걸."
일단 나는 이해 못하겠는데. 저 돌아 있는 놈한테 이해받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뭣보다 "서로"라니, 저 놈의 행위까지 조건에 같이 들어가 있는 게 어이 없었다. 나 혼자 잘 하면 되는 게 아니지 않는가.
"흐응."
청려가 턱을 괴며 의뭉스러운 눈빛을 했다.
"그런 얘기 하면 양심 안 찔려요?"
"이 정도로 찔릴 양심은 애저녁에 닳아 없어져서."
자랑이다.
말마따나 덮친 건 지 아닌가? 이건 애초에 예상된 상태이상이라기 보다는 저놈이 부딪히는 바람에 발생한 오류 같은 걸
"어쨌든...우리가, 음,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하니까. 상호 최선의 노력을 다 해 봅시다."
"없으면 뭐 어쩌라고."
딱히 자신 있어서 했던 적은 없다. 안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질 않는데 어떡하라고.
"나는 뭐...이 몸으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청려가 무릎을 끌어안고 턱을 괴더니 섬뜩한 말을 했다.
"딱 재밌을 때잖아요. 승승장구 오르막길."
"..야."
오함마만 조심하면 될 줄 알았더니. 멀쩡히 산 채 몸을 뺏기게 생겼다.
"멤버들 능력치도 그만하면 나쁘진 않고..그, 배우하는 친구는 딸리기는 하지만. 뭐, 이제 와서 멤버 갈기에는 제법 케미가 형성 되었으니.."
"농담이에요."
"이 x발 놈이."
"그 쪽 팀 멤버들, 내 취향 아니에요. 좀 너무 끈적거려서. 감정적이고."
"손해보는 것 같음 빨리 되찾아 가시라고."
"무..선배님 이 삶에 되게 애착 있으시네. 남의 몸인 건 여기나 거기나 똑같을 텐데. 이 참에 그 몸을 좀 즐겨봐요. 나쁘지 않을 걸?"
얜 그냥 내가 빡치는 걸 즐기는 거다.
"무, 문대야..!"
"박문대!"
"혀엉!"
복도가 왁자지껄해진다 싶더니 요식행위의 노크와 함께 병실문이 벌컥 열리고 녀석들이 쏟아져들어왔다.
"야, 괜찮아? 많이 다쳤어?"
"그냥..발목 살짝 삔거야. 별 일 아냐."
천연덕스레 답하는 청려를 보고 있자니 속이 꼬여 시선을 돌렸다.
배세진이 이쪽을 흘끔거리며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다 들린다. 들리라고 한 거 같기도 하고. 다른 멤버들도 지금은 박문대를 다치게 했단 생각에 청려에게 어느 정도 적의가 있어 배세진의 발언을 그냥 넘기는 거 같았다.
차분히 멤버들을 달래는 박문대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맞긴 한데, 지금 네가 쟤네한테 할 말은 아닌데. 그러나 다른 방도도 없었고, 청려는 정말이지 생각보다 박문대의 역할을 제법 잘 해내고 있었다.
테스타는 그 후로도 한참동안이나 왁자지껄 하다가 류청우가 박문대를 업고 병실을 떠났다. 업히라고 등을 내밀자 박문대는 당황한 듯 보였으나 잠시 망설이다 순순히 업혔다.
청려의 캐해 실패를 통쾌하게 여기며 비죽여봤자 뭐 딱히 점수판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발목을 다쳐 본 적은 없어서, 저 놈들이라면 기어이 박문대가 업힐 때까지 고집을 부렸을 수도 있겠다 싶긴 했다.
교통사고는 아니었지만 사고는 사고였는지, 멀쩡한 것 같던 몸이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다는 걸 병원에서 확인했으니 그래봤자 지나가는 몸살일텐데,
그러고 보니 아플 때 완전히 혼자 있는 것도 오랜만이다.
원래는 대충 늘 이랬던 것 같은데. 그 새 익숙해졌던 건지. 곁에 누가 있거나, 없으면 톡방이라도 왁자지껄 했는데...
[청려형 괜찮으세요?? 사고 났다면서요...!]
[아프면 안돼요 청려형ㅠㅠ]
괜히 띄워본 브이틱 단톡방에도 물론 아까 전에 나누었던 대화 정도는 있었다.
[괜찮아. 다친 데 없고.]
[다행입니다!!]
[형 그래도 당분간은 푹 쉬세요! 저희가 커버할게요!]
[맞아요 글고 필요한 거 있음 언제든 말씀하세요!]
그 후로는 이모티콘의 향연이었다.
지금쯤 청려가 우리 팀 멤버들의 갖은 애교를 라이브로 감상중일 거라 생각하니 더 열 뻗쳤다.
"아씨..."
진짜 열 나나?
[집에 비상약 어디 있어요.]
문대씨, 라고 저장된 번호에 메세지를 보내자 머지않아 답장이 왔다.
[티비 아래 오른쪽에서 두번째 서랍 열어봐요.]
[그런데 이 숙소엔 프라이버시라는 게 없나요?]
[진통제 없는데요.]
[없어요? 있을텐데. 다 먹었나?]
혼자 사는 새끼면 이런 건 제대로 갖춰놓으란 말이야.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단지 안에 약국이 있었는데...아직 열었나. 나오기 전에 전화라도 해볼 걸 생각했지만 어차피 멀지 않으니까. 다행히 약국은 금방 찾았고, 불도 켜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도 와 있었다.
"이게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거든요. 근데 또 진통제를 먹어도 되나요?"
"여기 소염진통제 들어있는데? 이걸로 안 잡히던가요? 많이 아프대요?"
"많이는 아니라는데 얘가 워낙 아프다는 소리를 안하는 애라서...두통이랑 몸살기가 계속 있는 거 같던데."
"네네. 약 먹게 되면, 설명서에 적힌 간격만 지키면 돼요?"
마스크 쓴 옆모습을 구경하고 있다가 툭 뱉었다.
"문대씨 아프대요?"
"덕분에요."
"너무하네. 나도 아파서 왔는데. 저도 진통제 하나 주세요."
누구는 호강이네, 가만히 누워있으면 약이고 물이고 다 대령할테니. 아, 이젠 주물러주기까지 하려나.
"그...좀 놔 둬봐요, 그냥. 너무 싸고 돌지 말고."
-그런데 이 숙소엔 프라이버시라는 게 없나요?
너네가 그렇게 애틋하게 챙겨줘봤자 그놈은 귀찮아 하고 있을텐데, 싶자 툭 나온 말이었다. 24시간 밀착해 있으면 청려놈이랑 연락하는데 차질이 있기도 하고.
이세진, 그러다 치겠다. 주먹 풀어라.
배세진도 아니고 이놈은 청려에게 그 사건 안다는 티 안내고 잘 처신한다고 생각했는데, 단 둘이 있게 되자 브레이크도 안 거는 모양이었다.
큰세진이 더 말실수 하기 전에 황급히 돈을 내고 약을 챙겨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와 청려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쓸데없이 넓은 현관에 불이 켜졌다.
타타타탓
그리고 경쾌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그래,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네.
콩이는 아까전부터도 계속 있었는데, 아까는 왜 혼자라고 생각했을까.
"왜 이렇게 반겨. 밥 떨어졌어?"
왕!
콩이를 데려오기 전에는 제법 외로웠을 것도 같다.
"아니, 별로 열 심한 것도 아니고..."
"그, 그래도 물수건 하면 기분 더 낫지 않아...? 너무 차가워? 미, 미지근하게 해올까...?"
그냥 혼자 있게 둬 줬으면 좋겠는데.
청려에게 컨디션이 좀 안 좋다, 머리가 아프다, 라는 말은 혼자 있게 좀 두라는 신호였다.
근데 이놈들은 머리가 좀 아파서 먼저 쉬러 들어가겠다고 하자 대경실색을 하더니 약을 사온다 물수건을 올린다 온갖 호들갑을 다 떠는 것이다.
"아니야, 괜찮아. 너도 쉬어 이제."
그러고는 쪼르르 제 침대로 가 앉더니 계속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룸메이트라 쫓아낼 수도 없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대체 어떤 감옥에서 살고 있던 거야, 박문대. 그 성격에 이 단체 생활, 스트레스는 안 받은 건지.
박문대 정도 보컬 실력이면 이 짓거리 하지 않아도 잘 팔 수 있는데...
"약국 바로 요 앞이잖아요."
밖에서 이 놈보다 더 거슬리는 놈의 목소리가 들려와 인상을 찌푸렸다.
"문대문대, 형 왔다~"
"...네가 왜 형이야."
대충 느끼는 불쾌감 그대로 표현해 보았더니 익숙한 듯 웃어넘긴다. 역시 박문대도 이 놈이 거슬렸던 게 맞군.
"진통제를 사오긴 했는데, 약사님은 병원에서 타온 약 먹었으면 참을만하면 약 필요 없고 그냥 몸이나 주물러주랬거든? 근데 아픈 거 굳이 참고 버틸 필요는 없으니까 아프면 얘기해."
"그럼..."
여기서 약을 안 먹겠다고 하면 이 놈이 들러붙어 몸을 주물러대는 건가.
"약 먹을 게, 줘."
그냥 먹고 누워 자 버리는 게 낫겠다.
"너 생각보다 많이 아프구나? 열도 좀 있네. 빨리 먹고 좀 자라, 주물러줄게."
그거 하지 말라고 약 받은 건데.
"문대 형, 게임할래요?"
"쉬잇!"
"문대 아, 아프잖아, 유진아...쉬어야지."
"형 심심할까봐...이거 안힘든건데..."
"알았어어..."
안 잔다. 어떻게 자냐.
잠들만 하면 뭔가 소음이 나고, 타인의 신체접촉이 끊이질 않고. 덕분에 근육통은 좀 나아진 것 같긴 하다만.
-아이고, 우리 재현이...이렇게 아파서 어떡하냐. 뭣 좀 먹을 수 있겠어?
걱정 가득한 손길을 느끼며, 얼굴을 있는대로 찌푸렸다. 쓸데 없는 기억이.
아마 2회차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게 너 너무 무리하는 거 같다고 했지, 내가.
처음부터 있던 멤버였고. 3회차까지는 데려갔었나. 4회차인가.
처음 버리기로 마음 먹었을 땐, 잠깐 센치해졌던 것 같기도.
뭐가 중요한 지를 왜 네가 정해. 이 무대는 중요하다고, 수십 번을 말했는데.
신재현은 제법 아끼는데, 청려한테는 영 도움이 안되는, 해가 되는 멤버였다.
네가 쓸데없이 물수건을 갈아주던 그 마음 반의 반만큼만 팀을 생각해 줬더라면.
발목을 살짝 삐었더니만 멤버들이 아예 땅을 딛질 못하게 하네요...
올스타 무대 서지 못하는 건 정말 아쉽지만, 빨리 나아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청려 선배님도 쾌유하시길 빕니다.]
얼씨구?
사진엔 류청우가 박문대를 공...공주님안기 하고 있고 박문대는 상당히 당황한 표정으로 류청우 목에 손을 감고 버둥대고 있었으며 그 옆에서 차유진이 신난다는 듯 손뼉을 치고 있었다.
지독하게 화목해 보이는 짤이다. 발목에 반깁스가 분명 눈에 띄지만, 그 외에도 씹고 뜯고 즐길 요소가 충분히 많을 만큼.
-아이고 우리 문대 발목 무슨일이야ㅠㅠㅠ아프지마러라 와기댕댕이ㅠㅠㅠ
-그래도 기운차보여서 다행이다...
-류리다 뭐냐고 아무리 그래도 성인 남성인데 넘 가뿐하자낰ㅋㅋㅋ
-청려 왜 청려 쾌유는 뭔데 청려 아픔?
ㄴ어제 인터넷 안했냐 둘이 무대서 사고났다 함
ㄴ어제 청려랑 박문대랑 실려갔다던 카더라 있었음
ㄴ어떻게 사고가 나도 우리 대천재명석아이돌라인만 쏙 골라서...
-쟤네 몸값이 얼만데 아티스트 보호 제대로 안하냐 방송가 문제있음
-청우도 청우지만 문댕 대체 얼마나 가벼운거야 아이고ㅠㅠ
ㄴ품에서 품으롴ㅋㅋㅋㅋ하긴 다들 문대 정도는 들 거 같긴 하다
ㄴㄴ햄찌는? 햄찌도 들 수 있어?
ㄴㄴ이참에 문대 들기 챌린지 하자
ㄴㄴ배세찌한테왜이러세오
-아기토끼 형아 걱정된다고 졸졸 쫓아댕기는거 봐ㅠㅠ
젠장. 인정하기 싫지만 역시 노련했다.
[청려 선배님의 쾌유를 비는 건 또 뭡니까.]
메세지를 보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어제 아프다며요.]
[내 잘못 아니라며요. 그럼 박문대만 피해자 하게 둘 순 없지.]
역시 이게 목적이었다. 영악한 놈.
나라도 그랬을 것 같긴 해서 더 짜증이 났다.
[어차피 한동안 활동 소화도 제대로 못할 텐데, 이 참에 아픈 척 좀 해요.]
[공황장애 도졌다고 해요.]
멈칫.
훅 들어온 말에 잠깐 답장 타이밍을 놓쳤다.
공황장애가 있었던가. 전혀 몰랐다.
[그나저나 여기 팀원들은 과보호가 심하네요. 피곤하겠어요.]
[그러는 이쪽 멤버들은 좀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거 아닌가요.]
[우리 애들은 용건 있는 거 아니면 연락 안해요. 내가 싫어하니까.]
진짜 브이틱이 어떻게 저런 성격파탄자를 리더로 앉혀두고 잘나가는 아이돌이 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 형!"
"형, 어쩐 일이에요. 몸은 괜찮아요?"
상태가 안좋다는 핑계로 엔간한 스케쥴은 취소하고 두문불출 하고 있다 보니 도대체가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심심했을 뿐이다.
"응, 좀 갑갑해서. 연습해."
잘하긴...잘하네. 고작 세명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시선을 강하게 붙든다.
대충 늘어진 티 입고 하는 연습으로 이 정도 포스라니.
퍼포먼스를 갈고 닦아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그룹같아 보였다.
나 같아도 아깝다.
"재...청려 형, 어, 어땠어요?"
"좀 오랜만에 해서..."
"잘하네."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가볍게 했더니 멤버들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형...죄송해요, 정말."
"저 초심 안 잃었어요! 진짜예요! 청려 형...저희 포기하지 마요, 네? 잘 할 수 있어요."
신재현, 대체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해놓은 거냐.
통화 최근기록 창만 하염없이 노려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문대씨
발신연결 안됨.
전화가 씹혔는데, 다시 걸기도 좀 그렇고. 이거 은근히 자존심 상한다.
널찍한 집에서 할 일도 없고. 심지어 콩이도 한참 산책하고 터그놀이까지 하더니 지쳐서 자고.
[통화 언제 됩니까.]
메세지 남겨놓고 침실로 들어갔다. 거실은 너무 환하고 넓어서 괜히 기분이 좀 그랬다.
아 빡치네. 진짜 저 숙소엔 프라이버시가 없나.
[밤에 전화할게요]
그 한마디만 붙잡고, 도무지 흐르지 않는 시간을 억지로 보냈다. 박문대로 깨어난 이후 이렇게 더디게 간 시간은 없었다.
'엄청 기다렸나보네. 전화 이렇게 빨리 받은 거 처음인 거 알아요?'
쿡쿡 웃는 소리가 아주 얄미웠다.
"그쪽은 그 몸 생활이 아주 재밌나 봐?"
'나도 곤란해요.'
박문대의 성대를 가지고 있어도, 노래 스킬이 그쪽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긴, 상태창도 여전히 나한테만 보이니까.
"그래서, 그...내 입장을 이해하는 건 좀 진전이 있고?"
나도 전혀 실마리가 없는데 얘라고 있을 리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묻는 기분도 참담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 지금, 나 때문에 못 돌아가고 있다는 소리야?"
'아마도?'
얘가 지금 정답 없는 문제라고 책임을 막 회피하네.
'당연하잖아요. 나는 문대씨의 길을 걸어봤고, 문대씨는 내 길을 아직 못 걸어 봤으니까.'
"아니..."
그야 청려도 처음부터 미친 놈은 아니었겠지.
'문대씨한텐 좀 어려운 문제니까, 내가 도와줄게요.'
선심쓰듯, 자신이 답을 가지고 있다는 듯 구는 태도가 아니꼬웠으나, 지금은 저 놈의 호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내 방 혹시 뒤져봤어요? 공책. 찾았죠?'
"...그래."
이 상황에 네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여 개인적인 공간을 뒤지지는 않았다, 해봤자 저쪽도 안 믿을 거다. 프라이버시는 개뿔, 서로 알몸이 까인 상황에.
생각보다는 기록의 양이 많지 않았다.
'원래는 훨씬 자세히 적었었어요. 인간관계에 대한 것도. 기억나는 건 다 적어두던 시기도 있었고. 사람 고쳐써보려고도 했으니까.'
멀쩡한 남의 아버지를 고인으로 만든 경험이 있나 보군.
'그런데요. 다 별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회귀하며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본인의 기억 뿐.
'브이틱 멤버들이 나한테 관심이 없다고 했죠? 그렇게 만들려고 굉장히 애썼어요. 그 관심이라는 거, 아주 쓸데 없고 거치적거리기만 하니까.'
청려의 목소리엔 조금의 떨림도 묻어있지 않고 아주 깔끔했다.
그래, 알겠다.
'이 친구들이 이만큼 치댄다는 건, 문대씨가 그만큼 곁을 내줬다는 뜻이겠죠.'
머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훅, 후욱,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비틀.
어지러워져서 침대 헤드에 기댔다.
-문대 씨는 내 길을 안 걸어봤잖아요.
안 걸어봤다. 비슷한 것만 겪어봤지.
사별.
이 놈은 사별을, 한 명도, 두 명도 아닌 온 세상에 대한 사별을, 수 차례 겪어야 했던 거다.
사실 나에게도 어려운 문제는 아니어야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무슨 생각으로 공부에 집착했던가. 그야...달리 살아갈 동력이 없으니까.
눈앞이 까매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 느낌과 함께 무릎을 베란다 바닥에 세게 찧었다. 소리없는 신음을 삼키며 더듬더듬 폰을 주웠다. 새끼, 어디 앉아서 좀 통화할 것이지.
"...여보세요."
'뭐야. 이렇게 쉽게?'
청려의 헛웃음 소리가 들렸다.
이 와중에 비꼬기냐.
얼얼한 무릎을 문질러대며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다 이해하진 못해. 인간이 어떻게 타인을 전부 이해해. 어쨌든, 요건에 맞는 최소한의 공감은 했나보지. 딱 하나만 반박하자."
생판 모르는 남인 내가 봐도 알겠더라. 주인한테 인정받고 싶은 강아지마냥 낑낑들 거리는 거.
하긴, 생판 모르는 남이어서 알겠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애들에겐 네가 처음이고. 네가 어떻게 느끼던 간에, 걔네한테는 그래."
상대를 이해하라고 했는데, 뜬금없이 자아성찰의 시간이 되고 있었다.
"너만 곁을 내주면."
내가, 곁을 내주었었구나. 꽤 많이.
"그럴 수 있어. 너한테는 이제, 마지막이니까."
나한테도 그래야 할텐데.
"너 왜 절뚝거리냐. 발목 또 아퍼?"
"아니."
아침에 물 마시러 나왔다가 마주친 큰세진이 매의 눈으로 지적했다.
"그냥 무릎을 좀 부딪혀서 그래."
"무릎? 무릎은 또 언제. 봐봐."
그러고 다짜고짜 앉아서 내 잠옷바지를 확 걷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야, 뭘 어떻게 부딪히면 이렇게 되냐? 너 혹시 뭐 쓰러지거나 한 건 아니지?"
음, 몸에서 잠깐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으니 쓰러진 거 비슷한 거긴 한데.
"쯧, 하여튼 몸이 성할 날이 없어요, 가만 보면. 이따 병원 가자."
"네가 의사냐, 진단하게? 의사 안 웃어, 웃으면 그 의사가 이상한 거지."
과보호가 심하다, 확실히.
"뭘 니가 웃냐, 웃기는. 문대문대, 어째 간만에 기분이 좀 좋아졌어?"
"내가 뭘."
픽 웃으며 일어난 큰세진이 물 한잔 따라 마시고는 말했다.
인정하자. 지금은 확실히 웃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딴 사람 같았냐."
"오, 이제 말해 줄 생각이 든거야? 생각 좀 정리됐어?"
확인받은 것 같아서.
이 놈들은, 이 몸에만 연결된 인연이 아닌 거다.
'나'의 인연이다.
"왜, 박문대."
"우리, 이대로 잘 가자."
녀석의 막 잠에서 깨 살짝 부어있던 눈이 좀 커졌다.
"최선을 다 해볼게."
몇 번 눈을 깜빡깜빡이던 큰세진이 씩 웃으며 주먹을 들어보였다.
"콜."
콩, 주먹이 맞부딪혔다.
"와, 역시 청려형, 헉, 쉬었다 오더니 더 잘해..."
"헉, 청려형은, 사실상 연습 필요 없는 거 아니에요? 허억."
"안돼, 그런 말 하지마 우리가 형 필요하잖아!"
간만에 돌아온 몸이 뜻대로 움직이는 게 기꺼웠다.
특별히 좋다고 느낀 적은 없었는데.
"너네."
생수 한 병 마시고 조용히 폰만 보던 청려가 입을 열었다.
"네, 네?"
"네, 형."
"콩이 보러 올래?"
"네, 네! 갈래요!"
"야, 너 개 알레르기..."
"닥쳐, 약 먹으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