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 당사자들만 서로의 네임을 볼 수 있다는 날조 끼얹어서 류청우 발목에 류건우 네임 있는거 보고 싶다. 그리고...

원래 류건우 때는 네임 있었음. 다만 그 이름이 알아볼 수 없이 뭉게져 있었음.
....우연히 류청우 발목에 있는 네임을 보기 전까진.
류청우의 파트너가 류건우, 그러니까 나라는 거.....
-응? 아, 그렇게 해. 오늘 촬영에서 많이 수고했어.
-형도요.
박문대가 후다닥 욕실로 들어가서 옷을 다 벗었음. 일단 얼굴이나 손 발목, 이런데는 없었음. 일상에서 몇번이나 보게 되는 부위니 잘 알았지. 박문대는 몸 구석구석을 거울로 확인했음.
-....류청우.
그 뒤로 박문대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계속 고민했음. 무심코 류청우의 네임이 있는 발목을 흘끗거리려는걸 꾹 참으며 고민했음.
모른 척 하기에는 제가 류청우의 네임을 확인한 뒤로 하루가 멀다하고 날개뼈가 욱신거렸음. 다행히 한순간 따끔하고 말 정도지만...
-형, 또 틀려요! 집중 안해요!
-문대문대, 오늘따라 집중을 못한다?
-무, 무슨 일 있어....?
-아니. 딱히 없어. 신경 쓰게 해서 미안하다.
-없긴, 너 계속 멈칫거리는데 혹시 어디 아픈거 아냐?
-어깨? 등?
-.... 잠을 잘못 자서 날개뼈가 쑤시는거야.
-아하. 그래?
전혀 안 믿고 있군, 이 자식. 박문대가 짜게 식은 사이 류청우가 다가오며 말했음.
-잠을 설친거야?
-....약간요.
-괜찮,
-그럼 좋죠. 제가 뿌려주고 올게요~
아무래도 박문대와의 신뢰도가 낮은가보다. 기어이 이세진이 뿌리는 파스약을 받아 박문대를 이끌었음. 다 남자끼리라 그냥 옷 까도 문제가 없어서 일단은 연습실 한구석에 섰음.
-흐음, 멍 같은건 없네.
-그냥 잠 못 잔거라니까.
-그래, 믿을게. 오른쪽, 왼쪽?
미심쩍지만 일단 눈에는 어디 멍 들었거나 부었거나 하는 부분이 없으니 넘어가주겠단 뜻이었음.
옷을 내리고 정리한 박문대는 찝찝함에 눈을 굴렸음. 기분 탓일까. 류청우의 시선이 굉장히 집요했던 것 같아 어딘가 떨떠름해졌음.
첫째로는 류청우의 네임이 류건우인데, 이젠 박문대인 자신이 뭘 어떻게 하겠어. 겉으로 보기엔 둘다 일방향 각성이었음. 당연히 파트너가 못됨.
두번째로는 본질적으로 둘이 친척관계라는 것에 있었음.
세번째로는 둘이 같은 그룹의 리더와 메인보컬인 아이돌이란 것이었음. 물론 연예인끼리, 동성끼리 네임 파트너가 되는게 없는 일은 아니라지만 아무래도 팬장사를 하는 아이돌에겐 무리가 있었음.
아무튼 그런 이유들로 박문대는 자신의 네임을 숨기고 싶었음. 류청우가 자신의 네임을 발견하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만약의 경우를 상상하자면. .....상상하기 싫었음.
-문대야. 잠 다깼어?
-아, 네.
-그래. 그럼 이제 밥 먹자.
거실 소파에 앉아 아침멍때리기를 빙자해 골몰히 생각하던 박문대를 류청우가 끌어당겼음.
-박문대 너 날개뼈는 괜찮아?
-아! 맞아요! 형 이제 안 아파요?
어제 그런 일이 있었던 탓인지 배세진과 차유진이 고양이 두마리처럼 고개를 돌렸음. 막 밥 끄트머리를 떼어 입에 문 박문대가 고개 끄덕임.
-다행입니다, 형.
-응.... 다행이다, 문대야.
초식동물 두 마리가 수줍게 인사했음. 박문대는 기특한 마음에 두 사람의 접시에 계란후라이를 한장씩 얹어줬음.
-나도 줘요! 김래빈만 주는거 안돼요!
-그래.
차유진의 밥그릇에도 한장 슥 얹어줬음.
-나도 줘.
-네?
-나도 한장만 주면 안돼?
진정....? 밥 그릇을 내밀며 웃는 류청우의 모습에 잠시 버퍼링이 온 박문대가 계란 후라이 한장을 류청우의 밥그릇에 올려줬음. 고마워하며 웃는게 괜히 낯설었음.
스프링 아웃 연습을 위해 단체로 대형을 맞춰 춤을 추고 라이브 연습을 하던 때였음.
-문대야. 혹시 나 음 좀 봐줄 수 있을까?
-일단 한번 불러보세요. 봐드릴게요.
류청우가 동작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걸 지켜봤음. 괜히 한 말이 아닌지 끝음이 떨렸음
-응. 그럴게.
류청우는 꽤 우수한 학생이었음. 한두번만에 음이 안정적으로 이어졌으니까.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박문대의 어깨를 감싸쥐고 류청우가 말했음.
-고마워, 문대야. 네가 도와줘서 좋다.
왠지 묘한 뉘앙스였음.
이뿐만이 아니었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든건지 최근 류청우가 쓸데없는 일로 박문대를 부르고는 했음. 근처를 늘 맴돌고 있는건지 최근 대화를 거는 수도 늘었음. 박문대는 저 놈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음.
-콘서트 끝난지 얼마 안되서 하는 말이라 좀 웃기지만, 다음 유닛은 나랑 할래?
-응. 문대는 항상 무대를 재미있게 꾸미니까.
차유진과 한 유닛 무대가 제법 취향이었나. 이게 목적이었나. 그렇게 생각하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음.
-전 상관 없지만, 일단 생각을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일정도 없고요.
-그건 그렇지. 긍정적으로 생각해줘.
-네. 그럴게요.
-주물러줄까?
-네?
-계속 신경쓰는 것 같아서.
박문대가 묘한 낯을 했음. 날개뼈가 종종 뜨거워 불편하긴 했는데 그렇게 티를 냈던가.
류청우의 손이 뜨거웠음. 어깨를 감싸쥐는 손이 뜨겁고 부드럽고, 또 묘하게 상냥했음. 박문대는 자신이 거절하기도 전에 주무르기 시작한 류청우를 잠시 흘겨봤지만 밀어내지는 않았음. 기분 좋게 조물거리는 손길에 마음이 나른해졌음.
류청우가 네임을 발현한건 후유증 치료를 받으며 억지로 대회 연습을 하던 때였음. 처음 발목에 생긴 네임은 뭉게져있었음.
그리고 그런 류청우의 발목에 있는 네임이 뚜렷해진 건 그가 아주사 출연을 확정했을 때였음. 친척의 끈질긴 설득에 출연을 승낙하고 돌아와 잠시 졸던 때. 갑자기 발목이 욱신거리며 아파왔음.
그리고 류청우는 뭉게졌던 네임이 어떠한 이름을 희미하게 표상하는 것을 보았고.
아, 네가 태어났구나. 하고, 환희에 빠졌음.
네가 존재하는구나. 네가 이 세계에 와줬구나.
얼핏보면 ㄹ인지 ㅂ인지 구분이 안가는 것으로 시작했음. 단지 딱 보기에 영어나 외국의 언어는 아니었음이 확연했음.
류청우가 처음 박문대를 알게 되었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음. 그냥 무대 잘하는 연습생. 똑똑한 연습생.
이름이 더 선명해진 건 박문대가 유독 반짝거리며 빛나는 듯한 무대를 하고 내려왔을 때였음. 세트 무대를 내려오는 박문대를 보다 발목이 욱신했음.
이름은 꾸준히 선명해졌음.
유아의 성장치곤 글씨가 지나치게 빠른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걸 느꼈으니까.
그리고 류청우가 발목에서 선명한 이름을 본 것은 테스타가 데뷔하고, 박문대와의 마찰이 어영부영 해결된 직후의 일이었음. 술을 정리하고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발목이 아팠음.
-...박문대?
욱신거리는 발목에 그의 이름이 지나치게 선명했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음. 갑자기 너무 많은 알았고, 너무 많은걸 몰랐음. 류청우는 애꿎은 머리를 쥐어뜯을 뻔 했지만 초인적으로 참아내며 생각했음.
그 이후로 류청우는 상당히 오래 박문대를 관찰했음. 혹시 문대가 내 네임을 볼 수 있나 확인해보고.
또 문대한테 혹시 내 네임이 있나 찾아보기도 했음. 남의 옷을 들출 순 없어서 보는 부위는 한정되어있었지만.
그러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박문대는 말했음.
-왜 그러세요?
그건 참 아름답고 두려운 감정이었음.
-아니?
-근데 왜 저래?
-글쎄.... 신경쓰이지 않게 빨리 해결할게, 고마워 세진아.
배세진이 조금 쑥스러워하는 것을 뒤로한 류청우가 생각했음. 어떤 이유로든 박문대가 자신을 은근히 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죽도 밥도 안될거라면 차라리 들이대기라도 해보겠다고.
만약 박문대에게 자신의 짝사랑을 들킨것이 아니라 모종의 이유가 있다면? 류청우는 간혹 자신의 발목을 노려보는 박문대를 떠올렸음.
-제가 뿌려주고 올게요~
류청우는 이세진의 손에 잡혀 끌려가는 박문대를 지켜보았음. 내가 해주고 싶었는데. 파스 핑계로 등에 네임이 있나 확인할 수도 있고.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과 약간의 질투가 일었음.
-류청우
-응. 왜?
-나 이 동작 좀 봐줘.
배세진이 성큼 다가섰음. 평소라면 다른 멤버들한테 갔을텐데.
-....너 말이야.
-....
-그, 박문대... 좋아해?
-....
류청우의 눈길이 거울 속의 박문대에 맺혀있었음. 한껏 부드러운 얼굴이 박문대를 멍하니 바라보며 미소지었지.
아무튼 제 마음을 누구에게 들켰던지 간에 류청우는 직진했음. 계속 말걸고, 그의 호의를 나눠받고, 곁에서 머물렀음.
-사탕 좋아요! 힘 생겨요!
-형도 드실거죠?
방방 뛰는 차유진에게 사탕을 먹여준 박문대가 류청우의 손에 작은 사탕을 올려놨음. 먹여달라하면 주책이려나.
-지금 먹어요.
-응? 아...
-나중에 또 줄테니까.
류청우의 귓가가 붉어지는데 박문대는 그것도 모르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렸음.
-혹시 더우십니까?
-아냐, 괜찮아 래빈아....
먼저 닿는걸로 모자라 웃어주기까지.
박문대는 류청우가 자신의 근처에 있다는 사실에 금방 적응했고, 당연하게 여겼음. 무슨 일이 생기면 청우 형, 하고 옆을 휙 둘러보곤 했지. 그러면 류청우가 응. 하고 눈 맞추며 웃어주었음. 하지만 그 날은 달랐음.
-옆에 있는 줄 알았네...
-다음 유닛은 나랑 할래?
테스타는 룸메이트 대로 유닛 무대를 하니까, 같이 지내고 싶단 뜻이었음. 매일 박문대가 자고 깨는 모습까지도 보고 싶었음
만약 내 네임 파트너가 눈 앞의 박문대가 아니어도 좋았음.
만약 박문대가 진짜 자신의 네임 파트너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좋다는 뜻임.
웃는 류청우를 따라 영문도 모르고 따라웃는 박문대가 귀여워, 류청우는 행복해졌음.
-많이 피곤했나보네요.
-그냥 업고 갈까?
어깨를 주물러줬더니 금세 잠든 박문대를 보고 멤버들이 수근거렸음. 류청우도 박문대가 이렇게 곤히 잠들 줄은 몰라 빤히 보기만 했음.
-내가 안고 갈게.
-오오, 그래주시면 좋죠.
멤버들이 짐을 대신 챙기는 동안 류청우가 나섰음.
류청우의 품에 고개를 대고 잠든게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음. 마음같아선 몰래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지.
-읏.
발목이 뜨거웠음. 그러니까, 네임이. 간혹 뜨거워지던 네임이 지금 또 그랬다는 뜻임. 류청우는 익숙하게 뜨거움을 참으며 나아갔음
-으응...
박문대도 그 열기를 느낀건지 눈을 찌푸려 괜히 제 발목을 뒤로 뺀 류청우.
내 이름이네. 그걸 안 순간, 어쩐지 속이 들끓더니 무언가 울컥 튀어나오는 것 같았음. 아팠던 발목이 놀라울 정도로 잠잠해졌고, 박문대의 네임도 열기가 잦아들었음. 류청우는 잠에 취해 뒤늦게 깨어나려는 박문대를 꽉 끌어안고 흐느끼듯 중얼거렸음.
-좋아해.
-...
-좋아해, 문대야.
-좋아해.
-....
-많이 좋아해.
-...형.
가슴팍에 박문대의 손이 얹어지더니 류청우를 꽤 강하게 밀어냈음. 류청우는 쉽게 밀려났고, 박문대는 잠이 확 깬 얼굴로 류청우를 봤음.
박문대는 류청우를 보고 있었음. 어딘가 일그러져서. 다정하게 사랑을 말한것치곤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음.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사람처럼, 비참한 얼굴로. 그 기이한 얼굴에 잠시 압도된 박문대가 목소리를 가다듬었음.
-저는, 형 마음 못 받아요.
-.....
-포기해주시면 좋겠어요.
-내가 남자라서?
-아뇨.
-그럼 내가 같은 그룹 멤버라?
-....
박문대가 말할 수 있는 거절 이유는 그것 뿐이었음. 네임도, 친척 얘기도 류청우에게 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음.
-네.
그러자 류청우는 희미하게 웃었음.
-알아들었어.
-....
-미안. 곤란하게 했지.
푹 쉬어. 류청우는 박문대가 어떤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일어나 방을 나섰음. 박문대는 그런 류청우를 바라보다 침대로 엎어졌음.
그렇게 절절한 고백을 한 주제에 류청우는 평소랑 같았음. 단정한 낯짝으로 늘 그렇듯 굴었음.
-문대야, 팔 각도!
-네.
벽을 가득 메운 거울에 박문대가 보였음.
고백을 받은 뒤로 저 서성임이 조금 신경쓰이긴 했지만.
-조금 쉬고 다시 할까?
-형 죽었어요!
-안 죽었어.
-문대 형은 효율적인 휴식을 취하고 계시는거야.
-그냥 드러누웠어. 바보 김래빈.
-바보는 너야, 차유진.
-뭐? 나 바보 아냐! 바보 너야!
-바보는 너야 이 단세포!
-시끄러워...
-문대는, 참 인기가 많네....
-문대문대는 마성의 남자니까.
너희까지 왜 그러냐는 박문대의 시선에 두 사람도 웃음을 터뜨렸음. 그 사이로 류청우가 박문대를 빤히 바라보고 있어서, 박문대는 자신도 모르게 류청우와 눈이 마주쳤음.
-문대야, 내려야지.
-알았어.
밴 밖으로 나오자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음. 앞서가는 멤버들을 뒤따라 걸으며 간간히 불리는 제 이름에 반응해 웃어줬음. 사방에서 팬들의 비명소리와 손들이 날아들었음. 박문대와 손 한번 잡아보려고, 옷깃을 잡아채려고.
-문대야, 이거 받아!
꽁꽁 포장된 종이 박스같은게 허공을 붕 날아 떨어졌음. 깜짝 놀란 박문대가 피하려 주춤거리는 순간, 어떤 팬이 박문대의 옷을 강하게 잡고 당겼음.
-꺄악!
-청우 형도 괜찮은거예요? 문대 대신 맞았잖아요.
-다행히 튼튼한 재질의 상자도 아니었고, 모서리에 찍히지도 않았어. 안에도 무거운 물건이 든 것 같지는 않았고.
-그래도 다음엔 조심해.
-그래. 문대는 다친 데 없지?
-네. 고맙습니다.
-고맙긴.
눈이 마주치자 류청우가 다정한 눈으로 말했음.
-....
일단 대기실로 갈까? 하며 멤버들을 이끄는 류청우를 따라 박문대도 걸음을 옮겼음. 잡은 손을 떨치고 싶었는데, 류청우는 박문대가 손을 흔들어도 놔주질 않다 세번이나 시도한 후에서야 놔주었음. 박문대는 류청우가 잡았다 놓으니 손을 다른 손으로 만지작댔음
방에 들어서던 차유진이 고개를 갸웃했음.
-오늘 하루만 선아현이랑 같이 잘 수 있어? 청우 형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막 짐을 풀던 차유진이 눈을 굴렸음.
-좋아요! 아현 형이랑 놀래요!
박문대는 신난 차유진을 데리고 선아현과 류청우가 쓰는 방으로 향했음.
-무, 문대야. 무슨 일이야...?
그 말에 류청우가 고개를 돌렸음.
-청우 형, 저랑 할 얘기 있잖아요.
-...그렇지.
-어... 난 괜찮아. 하루 정도면.
-와! 밤새 카드 게임해요!
-일찍 자라.
-Noope!
펄쩍 뛰는 차유진을 밀어넣으니 류청우가 멋쩍게 웃으며 밖으로 나왔음.
-무슨 일이야?
-옷 까봐요.
-응?
-다친 데 있나 확인하게. 까보라고.
문대야, 내가 형인데. 하고 말하면서도 류청우는 티셔츠를 걷었음.
-생채기가 좀 났네요.
맨 살에 닿는 박문대의 손길에 류청우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음.
-상자 자체는 괜찮은데, 옷 안쪽이 조금 거칠었나봐. 부딪히면서 긁힌것 같아.
-츳.
박문대가 어디선가 꺼내온 구급상자를 펼쳤음
-형.
-응.
-뭐 물어봐도 되나요.
-그래.
-저한테 고백한거요.
-.....
-그때 왜 그런 표정이었어요?
생채기가 난 부위가 조금 붉었음.
-내가 생각하는 박문대는 단호한 사람이거든.
-....
-근데 거절을 하면서 그랬잖아. '나 형 마음 못 받아줘요.'
-....
-이유를 물으니까 '같은 그룹 멤버라서.'
-내가 싫다는 말은 안 했잖아.
구급 상자를 여미던 박문대가 고개를 들었음. 슬쩍 몸을 비튼 류청우가 집요한 눈길로 박문대를 지켜보고 있었음.
-내가 싫다면 그렇게 말했을텐데,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렇게 얘기했을텐데.
-....그건,
-문대는 내가 같은 그룹원이라서 못 받아준다니까.
-그래서 그런 표정이었나봐.
-...저는, 형이 이해가 안돼요.
-어떤 부분이?
류청우가 눈을 깜빡였음. 방금 내가 무슨 소릴 들은거지? 하는 얼굴로. 하지만 박문대는 류청우의 얼굴을 외면하고 구급상자를 들고 일어났음.
-제게 형의 네임이 있는건 맞지만, 그게 형이 절 좋아하는 척 고백할 이유는 아니잖아요.
-...난 너 좋아하는데?
-내가, 네 운명의 파트너인게 너무 좋았어.
구급상자를 넣은 박문대가 뒤돌아섰음.
-나는 네가 좋은데, 너는 아니었잖아. 근데 네가 내 네임을 가지고 있는게 너무 좋아서.... 우리가 진짜 운명이라는 사실이 좋았어.
뭔소리야. 네 운명은 류건우지.
-네가 내 네임을 가졌다는걸 알기 전부터 난 네가 좋았어.
-....저를요? 왜요?
-그냥. 너를 지켜보다가 좋아하게 됐어. 내 네임이 네 이름인건 맞는데, 진짜 너일지는 몰랐어. 그래서..
-응.
류청우가 진정하고 제 발목의 바짓단을 올렸음. 박문대가 그걸 들여다봤는데, 이름이 진짜 박문대였음.
왜? 어떻게? 분명 이 발목엔 류건우라고 쓰여져 있었는데? 박문대가 머뭇거리다 네임 위를 손가락으로 문질렀음.
-역시 네 눈에 보이는구나.
-응? 응. 나 발현했을 때는 뭉게져 있었는데, 너랑 지내면서 네 이름으로 변했어.
-.....왜요?
-.....글쎄?
내가 널 좋아해서? 아님 운명이었으니까? 류청우가 은근슬쩍 고백하는걸 무시하고 박문대가 이마를 짚었음. 류청우는 이 네임이 줄곧 박문대였다고 얘기하고 있었음.
-다시 천천히 말해봐요. 형, 저 원래부터 좋아했어요?
-...네 네임을 확인하기 전부터 좋아했어. 나름 티를 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몰랐어요.
-안하던 애교도 떨었잖아.
-계속 말걸고, 옆에 있고, 찌질하게 굴기도 했고.
-그냥 우연인줄 알았어요.
-너도 내가 옆에 있는거에 익숙해졌잖아. 조금씩 친밀해지는걸 노렸거든.
-계속 만...진것도요?
-좋아하는 척 한게 아니라 진짜 좋아해. 근데 네가 계속 내 네임이 있는 곳을 보니까...
-....그래서 갑자기 고백한거예요?
-응. 말하지 않고는 못 참을 것 같았어.
박문대는 제가 했던 의심들이 다 착각이었다는 사실에 낯쩍었음. 시선을 피하는 박문대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류청우가 물었지.
-....
-나는 네가 좋아. 네가 신경쓰이고, 네가 내 네임을 가졌다는 사실에 믿지도 않던 신께 감사했어.
-....
-나는 너랑 같이 있고 싶고 대화하고 싶고 만지고 싶어.
너는 어때? 하고, 류청우가 물었음. 박문대는 형을 좋아하지 않아요. 라고 할 수 없었음.
-....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그렇긴 한데, 형처럼 성애적인 의미는 아니에요.
류청우는 말 없이 박문대를 바라봤음. 전혀 상처입지 않은 단단함에 문득 등 뒤의 네임이 따끔거렸음.
-그렇다고 아무 감정이 없냐 물으면, 그렇진 않아요.
-시간이 필요해?
-네.
류청우는 시원스러울 정도로 단호하게 대답했음. 제 감정이 뭔지도 모르고 혼란스러운 박문대랑은 달리 모든게 확고했음.
-대신 손 잡아줘.
-....
-가끔 포옹해주고.
-....
-내게도 기회가 필요해.
문득 류청우의 시선이 본인의 발목으로 향했음. 본능적으로 시선이 따라갔음.
-왜 그런 얼굴이야?
-제가 무슨 얼굴을 했는데요?
-어딘가 불안한 얼굴이었어.
평소같았으면 이런걸 지적할 놈이 아닌데. 네임 파트너라 더 신경을 쓰는건가.
-키스하고 싶어.
....? 불안 어쩌고 하던건.
-대신 포옹은 해드릴 수 있는데.
-기회, 달라면서요.
아니 싫음 말고. 하는 여우를 꼭 끌어안고 류청우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음. 그래, 키스가 대수인가. 류청우는 박문대가 자신을 좋아할 때까지 언제든 기다릴 수 있었고, 그가 자신을 좋아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음.
박문대는 그런 류청우를 가만히 내버려두며 품에 안겨있다, 아주 조심스레 마주 안아줬음.
-문대야.
-네.
-나 너무 행복한 것 같아. 네 덕분에.
-.....
-너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나 때문에 네가 행복하면 좋겠다.
류청우의 손바닥 아래서 박문대의 날개뼈가 따끈해졌음. 그 체온이 더는 아프지도 욱신거리지도 않았음.
-...저도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박문대는 태블릿으로 문서를 하나 클릭했음. 분명 제목은 한글이었는데, 내용은 온통 영어였음. 혼자 해석하자면 못할 건 없지만 은어나 전문용어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것 같아 박문대는 차유진을 불렀음.
-나 이거 좀 읽어줄 수 있어?
-이거 뭐예요? 영어 팬레터?
-아니. 신문 기사.
-오...
-애리조나의 안나 폴리는 자신의 네임 파트너를 만나기까지 15년이나 기다렸다고 한다. 그의 네임 파트너는 놀랍게도 옆집의 동갑내기 친구 앤디 스미스였는데, 15년간 안나는 앤디가 자신의 네임 파트너인줄도 몰랐다.
-앤디 스미스는 원래 바르뎀 스미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 개명을 한 뒤로도 자신이 바르뎀 스미스라고 생각했다. 주변인들에게 앤디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스미스씨'라는 호칭을 줄곧 원해왔다.
이는 학계에서 네임이 반드시 그들의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는대로 네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설의 한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류청우가 류건우의 이름을 보지 못한건 아직도 설명이 되지 않지만, 아마 박문대가 가설을 세우기로는 박문대가 류건우라는 사실은 남들에게 알릴 수도 없는 괴현상이기 때문일 것임.
-형!
-응.
-청우 형 와요. 연인의 시간 필요해요.
-유진이 간식 줬어?
-기특한 일을 해서요.
-나도 기특한 일 하면 보상 주나?
-초코바는 차유진이 다 가져갔는데.
-나는 초코바 말고. 키스.
-조금만 더.
-흠.
거부하지 않는 박문대의 모습이 귀여워 류청우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리다 탁자 위에 놓인 태블릿을 발견했음. 어려운 영어가 잔뜩이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이게 뭐야?
태블릿을 바라보던 박문대가 화면을 끄고 말했음.
-미국 러뷰어 팬레터요. 차유진이 읽어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