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우 본가 간 박문대 보고싶네

들릴듯 말듯 나지막이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조심스레 문이 열렸다. 뒤척,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눈을 살짝 찌푸리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깨 있었네?"
"하도 많이 자서요..."
"좀 괜찮아?"
"네, 많이 나아졌어요."
"열이 내려서 다행이다. 넌 꼭 아플때마다 진짜 무섭게 앓더라."
"폐 끼쳐서 죄송해요. 남의 집에서..."
"폐는 무슨, 내가 오라고 한 건데."
박문대는 처음부터 탐탁치 않아 하긴 했다.
휴가 때 아플 걸 뻔히 아는데, 굳이 남의 집에 가서 단란한 가족 휴가를 망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지랖 넓은 테스타 멤버들은 휴가 때 아플 걸 뻔히 아는 멤버를 혼자 놔둘
그리고, 생각보다 안 불편했다.
"저녁 준비 됐는데, 좀 갑갑하면 나와서 먹어도 되고. 아니면 방 안으로 가져다 주고."
"역시 갖다줄까? 그게 편하겠지."
"아뇨, 그...제가 나갈게요. 옷만 좀 갈아입고요."
"아이고, 우리 문대씨 왔구나. 앉아요, 앉아."
"안녕하세요..."
문대는 머쓱함에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몸은 좀 괜찮아요?"
"덕분에 많이 괜찮아졌어요, 감사합니다."
"전복죽 좋아합니다."
끼니마다 다른 죽을 먹다니, 호사가 아닐 수 없다.
문대는 윤기가 자르르 도는 전복죽과 나란히 놓인 동치미, 작은 종지에 담긴 장조림과 김치와 간장을 멀끄러미
"보리차야, 마셔. 너 땀 많이 흘렸더라."
"고마워요."
청우가 건네는 보리차를 받아 꿀떡꿀떡 넘기며 생각했다. 청우가 연신 남을 챙기고 배려하는 사람으로 자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요즘 애들은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을 최애라고 한다며? 내 최애가 문대씨인 거 얘가 얘기 하던가요?"
"아니 언젠 그래도 제가 최고라면서요."
"너는 아들이니까 열외고~
"노래만 잘하나? 말도 똑부러지게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한국사를 아주 기가막히게 잘 알던데."
류청우네 아버지는 박문대의 한국사 쇼쇼쇼가 특히 감명깊었었나보다.
"아, 네, 물론이죠."
"이 사람이 얼마나 주책이냐면, 우리가 가족모임을 가잖아,"
가족모임.
갑자기 명치가 콱 틀어막히는 것 같았다.
"아, 청우 파트도 다 얘기 했는데 뭘 그래요! 그리고 노래만 보면 솔직히 문대가 원탑이니까,
"알죠, 알죠."
속이 메슥거리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친척모임.
아직 이어지고 있는 듯한 그 화목한 모임. 한때는 류건우의 부모님도 있었을...
쨍그랑.
"아, 괜찮아요, 그냥 둬요. 숟가락 새로 줄게요."
"내가 주울게, 문대야...문대야? 너 괜찮아?"
"어머, 어떡해, 아이고..."
"제가 가볼게요."
청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직 안좋은데 무리한 거 아닌가? 아픈 애 앉혀두고 얘길 너무 오래...
아무래도 병원을 데리고 가야...
촤르르. 방금 먹은 죽이 고스란히 쏟아졌다. 시큼한 냄새에 역해져 몇 번 더 구역질을 했고 눈물이 주륵 흘러나왔다.
한참 변기에 고개박고 있던 문대의 들썩임이 좀 가라앉자 말없이 등을 쓸어주던 청우가 부축해 일으켰다.
건네주는 컵에 담긴 물로 입을 헹궈 뱉고 휙 돌아서다 휘청이는 문대를 청우가 단단히 붙잡았다.
"병원 갈래? 차 타면 금방이야."
"아뇨. 괜찮아요."
"그래도 한 번 갔다오는게..."
"가봤자 똑같아요. 저 차 타면 멀미 날 거 같아요. 그냥 좀 눕고 싶어요."
그새 오한이 드는지 몸이 와들와들 떨리는 것도 같고,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기도 했다. 그보다 참기 힘든 건 속이 꼬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 자근자근 내장을 꼬아놓는 것 같았다. 명치가 틀어막힌 느낌은 속을 게워내도, 크게 숨을 쉬어봐도 뚫리지 않았다.
주저앉다시피 하는 문대를 안듯이 부축해 침대에 눕힌 청우가 그새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이마를 쓸며 물었다.
"어떻게, 약이라도 먹을래?"
고개를 벽쪽으로 돌리고 눈을 질끈 감은 문대가 속삭였다. 그냥, 빨리, 어떻게든 이 거지같은 아픔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진통제? 알았어."
곧 조심스레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고 그 너머로 작게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진통제? 저기 오른쪽 서랍에 있는데, 저거 빈 속에 먹어도 되나?
그냥 내가 요 앞에 약국 나와서 하나 사오지. 방금 토한 애가 먹어도 되는 거 있냐고...
문대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듣기 싫은데 듣고 싶었다.
똑똑
"문대야. 약 먹자, 문대야."
읏챠, 일으켜 앉히고는 미지근한 물을 먼저 내밀었다.
"네..."
속이 울렁거리니 물도 비려 먹기 힘들었지만, 꾸역꾸역 몇 모금 삼키고 약을 받아 입에 털어넣고 삼켰다.
바로 누우면 물이 고대로 올라올 것 같아, 침대 헤드에 기대 눈을 감았다.
"이렇게 아파서 어떡하냐. 늘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괜히 우리집에 와서 더 고생인 것도 같고."
문대가 눈을 슬쩍 떴다. 방금 문대가 마시고 건넨 머그잔을 쥐고 있는 청우의 손이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그냥 제가 아픈 건데, 매번."
얌전히 누워서 배 위에 찜질팩을 얹고 이불까지 덮어주는 손길을 받아들였다.
"네, 좋네요..."
"그래. 좀 쉬고 있어. 어디 더 안좋아지면 꼭 얘기하고.
끄덕끄덕.
배가 따뜻하니 뭔가 가물가물하게 잠이 오는 것 같았다. 급격히 나른해지며 힘이 빠지는 와중에, 침대를 한번 톡 치고는 일어나는 청우를 불렀다.
"형."
"어, 문대야, 왜."
청우가 씩 웃었다.
"알지."
"제가 형 되게 좋아하는 것도 아세요?"
"...알지, 그럼."
몰랐나보다, 침묵이 길었다. 아직도 내가 자기를 내심 불편해하는 줄로만 알았나보다.
약에 수면제 효과도 있는지 잠이 미친듯이 쏟아져서 마지막 몇음절은 입밖으로 제대로 나갔는지도 잘 모르겠다.
꿈이라는 걸 알고도 꿈은 계속 됐다.
풍산 류씨 가족모임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게 너무 불안해서, 내리자고 집에 가자고 떼를 쓰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운 목소리가 깔깔 웃으며 크게 외치고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근데 아무래도 노래는 우리 문대 못 따라간다, 그치?
류건우의 엄마였다.
응, 아무래도 노래는 엄마 아들이 제일 잘하는 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