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수는 현재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2 이유? 애석하지만 이번엔 그리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어, 어엇. 아, 오랜만이다ㅎ...

@bzbzabkd
앙봉@bzbzabkd
18 views Feb 07, 2026 ~20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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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수는 현재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2
이유? 애석하지만 이번엔 그리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어, 어엇. 아, 오랜만이다ㅎ 이것도 대학생 땐데. 생일이었나 봐요...ㅎㅎ
...많이 친했나 봐.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사진과 보기좋게 마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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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건이 벌어지기 몇분 전으로 되돌아가보도록 하자...
그날은 아주 평범한 주말 밤이었고
김교수는 유교수가 씻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어
그러다 유교수가 머리를 좀 말려달라는 말에 투덜대며 드라이기를 건네받기도 했지

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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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혼자 말릴 수 있는 거 아닌가?
으으응. 좀 말려줘.

여느 때와 같이 틱틱대면서도 할 건 다 해주는 김교수인지라
유교수가 부린 앙탈 한번에 금세 입을 꾹 닫곤 손만 놀렸더래
보송보송해진 유교수가 고맙다며 김교수의 볼에다 찐하게 뽀뽀를 남겨놓는 탓에
김교수는 또 귀만 벌게져서 거실로 튀어나가버리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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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정말 평화롭기만 한 밤이었지
유교수는 생글생글 웃으며 김교수의 곁에 바싹 붙어 앉았고
김교수는 그런 유교수의 체온을 느끼며 모종의 안정감을 얻기도 했어
그러던 차에 유교수가 먼저 말을 꺼냈더랬지

맞다, 나 증명사진 찍으러 가야 하는데.
웬 증명사진.
면허증 갱신해야 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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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찍으러 갈 건데?
음... 글쎄요. 어차피 주말밖에 시간이 안 나니까. 다음주 토요일?
...같이 가.
자기두 찍게?
아니. 그냥.
그냥 따라와주는 거예요?
응.
우리 강아지가 날 너무 좋아하네.ㅎㅎ
...또 실없는 소리.
알겠어, 그럼 나가는 김에 데이트 해요.
...그러지.
응ㅎ 근데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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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얘기하니까, 나 교수님 옛날사진 보고 싶은데. 보여주면 안 돼요?

잠시 머뭇대던 유교수는 조금 수줍게 웃으며 이런 물음을 건넸어
그리고 김교수는 그 부탁에 눈만 몇번 꿈벅대다 그러지

안 돼.
왜애.
...별거 없어.

그러나 유교수는 그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눈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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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없어도 난 보고 싶은데?
...
나도 보여줄게요, 응?
...진짜 뭐 없는데.

결국 김교수의 팔을 살살 흔들며 온갖 아양을 떤 뒤에야
유교수는 주저하듯 폰을 꺼내드는 김교수를 볼 수 있었지
어릴 적 앨범들은 다 각자 본가에 있다보니
지금 볼 수 있는 건 거의 학생 때 남긴 사진들이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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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후...

와앟ㅎ 아, 이거 뭐야?!
아, 좀!... 지울 거야. 이리 줘.
아궇ㅎ 왜 이렇게 가오가 넘쳐, 응?ㅎ 아구 귀여워, 이거 언제예요? 몇년 전이야?ㅎㅎ
몰라, 학생 때겠지. 어서 내놔.
으흫ㅎ 이거 나 보내주면 안 돼요? 어떡해... 진짜 귀엽다ㅜ 눈빛 쫌 봫ㅎ
내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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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도 눈빛은 살아있는데요? 으이궇ㅎ 우리 강아지이이ㅎ

유교수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김교수의 양볼을 주욱 잡았다 늘리며 한껏 놀려대고 있었어
김교수는 당연히 지랄 좀 그만 하라며 버럭버럭 성을 냈지만
이젠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지 유교수는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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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누구한테 보내줬어요? 이건 진짜 나만 갖고 싶은데ㅎ
아무한테도... 아, 빨리 폰 달라고......

결국 김교수는 유교수에게서 폰을 뺏어들었지만
유교수는 이미 그 사진을 야무지게 제게 전송한 후였대

좋은 말로 할 때 지우지 그래...
응?ㅎ 나쁜 말로도 함 해보시든가요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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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젠 김교수를 진정시키는 법에 대해 잘 아는 유교수라서
금세 평온해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겠지
그리고 그 다음은 자연스레 제 차례였기에
유교수는 폰을 들고는 슥슥 수차례의 스크롤을 올렸더래

아, 여기부터 대학생 땐가 보다.
...사진이 왜 이렇게 많아.
좀 많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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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는 달리 본인의 사진으로 꽉꽉 들어차있는 유교수의 갤러리를 보며 김교수는 조금 벙찌기도 했겠다
그러다 김교수가 잠시 넋이 나가게 된 것은

뭐야. 이것도 너... 넌가?
응ㅎ 나 금발했을 때. 어때요? 어울려? 이때 이후로 한번도 안 했어. 못 했지. 머릿결 완전 개털돼서.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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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판 처음보는 듯한 유교수의 어릴 적 모습을 마주하고서였대
김교수는 그 사진에 한참동안 머물러있었지

왜, 이거 보내줄까요?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뭐... 그럴 것까진...
나중에 보내줄게. 금발 좋아하는구나, 몰랐네.
대가리 물들인 게 뭐, 뭐 좋다고.
네, 네. 보냈어요.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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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교수는 추후 소리소문없이 유교수가 보내준 그 사진을 꼬옥 저장하기도 했답니다
여튼...
그 뒤로도 유교수의 갤러리 탐방은 계속됐어
그리고 김교수는 쏟아지는 유교수의 옛모습들에 정신이 없었지
속으론 내내 이 생각뿐이었을 테고
...어릴 때도...
아니
어릴 때부터... 예뻤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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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멍하니 넋이 나간 채
눈알만 요리조리 굴리는 김교수였겠다
그래... 뭐...
그대로 쭉 평화롭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여기까진 너무 화기애애하고 분위기 좋잖아
그런데 머지않아...
김교수의 인생에 있어 손에 꼽을만한 중대한 사건이 막을 올리게 돼
유교수가 다음 사진으로 슥 넘긴 찰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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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수는 화면에 들어찬 얼굴을 바라보자마자 눈썹이 조금 꿈틀거렸어
우선... 제가 아는 얼굴은 분간이 잘 안 갈 정도로 작게 나오기도 했거니와

엇ㅎ

늘상 여유롭던 유교수가 그 사진을 마주하자마자 작게 동요하는 것마저 다 느껴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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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술을 좀 많이 마셨나 보다.ㅎ

유교수는 서글서글 웃으며 평소와 같이 떠들어댔어
김교수도 유교수가 워낙 사람들과 살갑게 지내는 걸 알기에 그리 신경쓰지 않으려 했지
어차피 십 수년 전의 사진이기도 하고
이젠 거의 기억도 가물가물할 텐데
이제와서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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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쩐지 다급한 손놀림과 함께 다음 사진으로 넘어간 순간
김교수는 차마 신경을 끌래야 끌 수가 없게 되었을 거야
유교수가 띠고있는 미소는 점점 어색해져갔고
힐끔힐끔 제 눈치를 살피기까지 했으니까

음... 금발 땐가 보다. 대학교 입학할 때 금발이었거든요. 알지, 성인돼서 들떠갖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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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화룡점정은 바로 그 다음 사진이었어

생일이었나 봐요...ㅎㅎ

또한번 휙 넘어간 사진조차도 사진 속 인물은 같았고
유교수는 점점 더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지
그 상황 속에서 김교수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많이 친했나 봐.

고작 이런 말밖에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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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툭 던져진 김교수의 그 말에 유교수는 생각보다 리액션이 컸을 거야

에이, 그냥요. 저때 우정이 다 그렇지 뭐.

웃으며 막 손사래를 치고
김교수의 팔뚝을 슬쩍 몸으로 밀면서...
아무렇지 않게 굴려 노력했을 테지
그러나 그런 유교수의 노력들이 무색하게
김교수는 이미 단정지어버린 후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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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어
어떻게 몰라 저걸
지나가는 개가 봐도 알겠다...
김교수는 저를 보며 여전히 웃고 있는 유교수와 눈을 맞춘 뒤
피곤하다는 듯 작게 하품을 하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어

눈 피곤한데. 이만 자러 가지.
응? 아, 응, 그럴까요?... 아이, 여보. 같이 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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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수는 김교수의 기분이 심상치 않은 걸 단번에 알아챘지만
괜히 말을 얹었다간 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라...
말을 아끼며 최대한 아양을 떨어댔지
김교수를 뒤따르며 몰래 사진을 지운 것은 덤이야

교수님... 바로 잘 거예요? 아직 이른데...ㅎ

김교수의 기분을 풀어주느라 밤이 유독 길기도 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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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날의 사건은 둘 사이 묻어가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봤지만...
실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건지도 몰라
그날 이후로 김교수는 왠지 평소와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아야만 했지
제 심보가 단단히 뒤틀린 건지 뭔지
안 들리던 게 막 들리고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어
한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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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거슬리기 시작했단 소리야
.
.
.

에이. 학생들이 더 젊고 예쁘죠.
아뇨... 진지하게 교수님은 진짜 언니라고 불러도 될 정도예요.
어머ㅎ 고마워요. 근데 어떡하지, 그런다고 에이쁠은 못 주는데.ㅎㅎ

학생들한테 웃으며 농담을 던지는 것도 신경이 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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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수님, 밥 잘 챙겨먹고 있어요.
열두시 전엔 오나.
응, 최대한 일찍 올게.
...응.

제가 모르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는 것도

유교수. 근데...
응?
꼭... 그런 옷을 입어야 하나.
어... 왜요, 야해?ㅎ
아니 그게...... 아냐...

그런 자리에 파인 옷을 입고 가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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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참, 오늘 처제 온대요?
아니. 못 온대.
으응. 아쉬워라.
...뭐 이리 관심이 많아.
응? 자기 동생인데 당연히 관심이 있죠.

하물며 제 동생을 처제라 부르며 꾸준히 관심을 보이는 것도 다...
김교수는 마음에 들지 않더래
자꾸만 가슴이 답답하고 속에 뭐가 채이는 기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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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하루는 유교수가 통화하는 걸 본의 아니게 엿듣고서
저 혼자 머리 끝까지 열이 뻗치기도 했지

아니 자기야, 그땐 내가 바쁘다니까?

...허
방금... 뭐?
자... 뭐? 허!......
이상하게 온몸에 짜증이 돋아서
평소보다 양치질도 벅벅.. 머리도 벅벅..
찬물도 한참동안 맞다가 나왔대
유교수 : 오늘따라 샤워를 오래 하시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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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하루를 경계태세로 지내다보니
평소보다 배로 날이 서있는 건 당연했고...
유교수도 김교수가 요즘들어 예민하다는 걸 진즉 눈치챘을 테지
그래서 평소보다 더 자주 메론빵을 공급해주기도 했을 거야
그러나 딱히 반기지도 않는 모습에 의아하기도 했더래
다른 빵집을 뚫어야 하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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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메론빵을 안 먹는 건 또 아냐
사다주는 족족 제 눈에 안 띄는 곳에서 잘 해치우곤 하는데
그래도 사람이 느껴지는 기운이라는 게 있잖아...
유교수는 좀처럼 쉽게 풀어지지 않는 김교수의 표정에 몇날 며칠을 알쏭달쏭했겠다
그러다 하루는... 유교수가 특강이 있는 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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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진짜 데리러 오게요? 바쁘시면서...
점심 땐데 뭐.
으응. 그럼 밖에서 점심도 먹고 들어올까?
그래도 되고.
좋아요. 그럼 나중에 연락할게.
응.

언젠가 제가 유교수에게 말했던 것처럼
김교수는 타 학교로 특강을 간 유교수를 데리러 갈 생각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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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뭐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뭐...
유교수가 남의 차에서 내리는 꼴이 이상하게 참...... 보기가 싫더라고
데려다주는 건 참 고마운 일 맞는데
뭐... 그럴 필요가 있나
그냥 제가 데리러 가면 되는 일이잖아
김교수는 그렇게 오전부터 출장을 가있는 유교수의 연락만을 내내 기다렸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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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드디어 제가 바라던 연락이 왔을 때
김교수는 곧장 차키를 챙겨 주차장으로 종종걸음했지

> 강의는 마쳤고 여기 교수님들이랑 얘기 좀 하다 가려구요~
> 우리 기사님 지금 출발하면 될 거 같아요ㅎㅎㅎ🥰

늦지 않게 데리러가기 위해 김교수는 운전에 바짝 집중을 했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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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유교수가 일러준 학교의 건물 밑에 도착한 뒤...
김교수는 유교수에게 문자를 넣었어

- 도착
- 어디야

그러나 10초가 지나고... 30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나도 유교수는 그 연락을 읽지 않았지
결국 김교수는 차문을 덜컥 열고 나와선 낯선 남의 캠퍼스 안을 가로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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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사람이 그리 좋은가...
아무리 자기 나온 학교래도 뭔 얘기를 이렇게나 오래...
곧 유교수가 나올 건물 쪽으로 향하면서도 김교수는 습관적으로 입속말을 중얼거렸지
그러나 그 중얼거림은 생각보다 짧게 끝났을 거야
몇 안 되는 돌계단을 오르자마자 저 멀리 익숙한 형체를 마주하게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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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수는 유교수를 발견하자마자 상체가 그쪽으로 완전히 기울었을 테지
어서 빨리 유교수를 데려갈 생각밖에 없었어
그러나... 그런 김교수의 발길을 잡아끄는 것은

응, 그러니까...... 어머. 김 교수님!ㅎ

저를 보고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드는 유교수...의 곁에 서있는 또다른 누군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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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렇게 빨리 오셨대ㅎ 날아왔네. 차는요? 주차했어요?
아뇨. 그냥 이 앞에 잠시...
응, 바로 가요 그럼.
...그래요.

유교수는 제 곁으로 다가와선 활짝 웃어보였어
그러나 김교수의 신경은 온통 유교수의 뒤편에 가 있었지
김교수는 제게 살짝 고개를 꾸벅이는 그 여자에게 덩달아 묵례를 건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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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대로 몸을 뒤돌려 가려했지
당연히 그래야 맞았고...
그런데 이게 웬걸

엇, 교수님 잠시만요.

유교수는 차로 잘 향하던 발걸음을 대뜸 멈추곤 뒤를 홱 돌아보면서 그러잖아

미안, 진짜 잠깐만요... 우교수, 나 두고 온 게 있나 봐.
연구실에?
응... 그런 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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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좀 챙기시지.
깜빡했어. 그럼 같이 올라갔다가,
놉. 그냥 혼자 다녀오세요.
응?
담배.
하... 자기야. 그럴 거야?
다녀오세요.

그리고 유교수는 작게 한숨을 폭 내뱉곤
김교수를 향해 미안한 얼굴로 잠시 기다려달라 속삭이고서 다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섰어
그렇게 김교수는 원치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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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보는 사람과 단둘이 남겨진 것도 모자라
그 상대가 계속해 저를 힐긋대며 훑어보고 있는 게 느껴진다면...
당연히 불쾌할 수밖에 없잖아
김교수는 자꾸만 제게로 달라붙는 시선을 겨우겨우 못 본 척하며 어서빨리 유교수가 와주길 기다렸을 거야
그러나 잠시 뒤
김교수는 왠지모를 기시감이 온몸을 휩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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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저를 자꾸 훑어봐서 그 불쾌감에 소름이 돋는 줄 알았어
짝다리를 짚은 채 껄렁하게 서있는 폼도 교수로 쳐주기엔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게다가 그 웃음
알아채기도 어려울 정도로 묘하게 걸려있는 웃음에
김교수는 계속해 제 기분이 언짢아지고 있었지
그런데 순간 문득 스치는 기억이 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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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아... 설마...
그 인간인가?
유교수 예전 사진에서 본 그...
...맞는 거 같은데
딱 저렇게 생겼던 거 같은데
이 학교 교수였구나
하긴
그게 대학생 때 사진이랬으니...
그럼 같은 학교에서 계속 같이 공부한 건가
...친할 만 하네
그렇게 부를 법도 하고
그럼 얼마 전에 통화한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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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때가 대체 언제적 일인데?
아직 그렇게 부를 정도로 친한가?
애초에... 계속 그렇게 지낼 수가 있나?
만일 내 생각이 들어맞지 않더라도
그러니까...
유교수가 이 사람과 만난 게 아니더라도

피실래요?
...예?
담배.
...
비흡연자세요?
...아... 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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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제 앞에 들이밀어진 얄쌍한 담배 한개비
그 담배 하나에 김교수는 길어지는 사고의 끝을 잘라냈어
이내 담뱃불을 붙이는 소리와 더불어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댔지만
김교수는 뇌에 힘을 잔뜩 준 채 그 욕구를 꾹 참아냈지
요즘 잘 참아왔는데 유교수를 또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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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앞의 여자... 그러니 우교수라는 사람은
그 뒤로 한참동안 천천히, 또 길게 담배연기를 내뱉기만 했어
말 붙일 주제거리를 찾고있는 건지
아님 정말 아무런 신경도 안 쓰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선 그렇게 담배만 태웠지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지는 건 오히려 김교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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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유교수와는 정확히 어떤 사이인지
단순히 친구 관계에 그치는지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걸 주고받았을지
만일 그렇다면...

지믽이... 아. 유교수가 말해줬어요. 좋은 분이시라고.

생각지도 못한 때 던져진 문장에 김교수는 작게 움찔했어
정확히는 그 문장 속 담긴 유교수의 이름에 반응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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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뭐길래 유교수 이름을 그렇게 쉽게 부를 수 있는지
김교수는 잘게 떨리는 미간에 겨우 힘을 줘놓고
저를 바라보는 그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어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제가 기대한 것이 아니었지

아, 저 논문도 봤어요. 그, 𝒷𝓁𝑒𝓃𝒹𝑒𝒹 𝓁𝑒𝒶𝓇𝓃𝒾𝓃𝑔. 인상깊던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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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게 신선했어요.
...
원래 말이 없으신 타입?
...쓸데없는 말은 안 합니다.
아. 오케이.

우교수는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또 한번 길게 연기를 뱉어냈어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고서 말을 이어갔지

근데, 유교수는 말 없는 사람 힘들어하는데.

그 얼토당토않는 문장에 김교수는 더이상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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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걸어주는 거 좋아해요. 쓸데없는 말도 좋아하고. 농담도 좋아하고.
...그렇습니까.
한번 해보세요. 추천. 이상한 거에도 잘 웃을 걸요? 이상한 사람이라. 아, 아재개그도 좋아하는데. 몇개 알려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진짜 알려드릴게요. 효과 좋은데.
괜찮다지 않습니까.
아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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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진짜 효과 좋을,
교수님.
음?

김교수는 급기야 짜증이 섞인 듯 날카로운 말투로 우교수를 불렀을 거야
그러나 얼마 못가 김교수는 작은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어낼 뿐이었지

...아닙니다. 알겠으니... 그만하시죠.
아. 넵.

이대로 가다간 결코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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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딴 걸 알려줘?
유교수랑 친하다는 거야 뭐야
먼저 말 거는 거 좋아한다고?
그걸 누가 몰라
나도 그 정도는 다 알아서 해
별것도 아닌 걸로 폼이나 잡고 있고
...하여튼 맘에 안 들어

근데 또. 생각보다 like 유리멘탈. 뭔지 아시죠.
...
맨날 웃고는 있는데. 마냥 웃는 건 아닌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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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맞춰주려면, 좀 더 표현을 많이 해야돼요. You know what I mean.
하... 저기요.
네.
아니, 그런 말씀을 왜 하시는 겁니까?
네?
뜬금없이 그게 다 무슨-

김교수는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말을 이어다가말고
머리를 강하게 헝클이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어

교수님, 미안ㅜ 오래 기다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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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유교수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거든

미안해요, 이걸 두고 와서... 요새 건조해서 그런가. 안약 없으면 안 되겠더라구, 진짜.

유교수는 그렇게 잔잔하게 쫑알대며
곧장 김교수의 곁에 바싹 다가가 붙었어
그 탓에 김교수는 더는 말을 꺼내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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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챙기셨을까요 유교수님? 또 깜빡해서 두고 가는 건 없으시겠죠?
네네. 근데 우교수님은 연구실 청소 한번 하셔야겠던데요. 먼지가 아주 그냥ㅎㅎ
지믽.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냐?
어머ㅎㅎ 때와 장소는 가려주실래요. 숨 쉬듯이 무례하시네요?

그러나 그렇다 해서 감정이 가라앉은 건 아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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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만담을 나누고 있는 그 둘 앞에서 제 존재감은 너무나도 작았어
저는 차마 끼어들 수 없는 그 수많은 시간의 간극을 어찌 좁힐 수 있겠냐만
그래도 이건...
...이건 아니잖아
내가 아무리 생각을 좋게 해보려 해도

아, 씹...... 진짜.
...응? 교수님, 뭐라구요?

그게 잘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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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수는 들릴 듯 말듯 욕설을 내뱉어놓곤
그대로 제 곁에 있는 유교수의 손목을 낚아채듯 붙잡았어
그리고는 강하게 제 쪽으로 그 손을 끌어당겼지
그 탓에 유교수는 살짝 휘청였지만
김교수는 아랑곳않고 더 힘을 싣기만 했어
갑작스런 김교수의 행동에 당황스러웠는지
유교수는 벙찐 얼굴로 김교수를 연신 불러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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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수는 그런 유교수의 부름에 단 한번도 대꾸해주지 않았어
오직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목적이라는 듯
서슬퍼런 눈빛으로 우교수를 노려본 뒤 재빠르게 몸을 돌렸지
그렇게 유교수는 김교수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했을 거야
굽이 있는 신발이라 계속해 불안정하게 휘청거렸지만
김교수는 도무지 걸음을 멈춰주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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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앞만 보고 걷던 김교수가 우뚝 멈춰서게 된 건

아, 교수님!... 읏...... 잠깐만요, 응?...

짤막한 비명소리와 함께 유교수의 몸이 크게 기우뚱거렸을 때였어
끝내 그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웠던 건지
유교수는 제자리에 멈춰 쪼그려앉고는 발목을 부여잡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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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았다면 발목을 삔 거냐며
곧장 제 두 눈으로 확인해봤을 김교수지만...
오늘은 차마 그럴 여력이 없었어
도무지 그런 걱정을 내비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읏...... 교수님, 좀 잡아줘요... 일어나질 못하겠어...
...
교수님... 응? 보고 있지만 말구,
야.
...
...야, 유지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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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그래요, 갑자기...
재밌어?
...
재밌냐고. 이딴 식으로 사람 긁어놓고 반응 보는 게.
그게 무슨... 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그래. 알아, 나도.
...
너도 결국에는...
...
......날 동정할 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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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수는 그 말과 함께 시선을 툭 떨궜어
이런 것까지 말하고 싶진 않았다는 듯
뱉었던 말을 속으로 곱씹고 있는 미묘한 표정이었지
그리고 단 한번도 생각지 못했던 김교수의 속을 마주하게 된 유교수는... 답지 않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을 거야

무슨...
...
교수님,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61
눈빛은 갈피를 잃어 바람에 나부끼는 촛불처럼 흔들렸어
시큰거리던 발목의 통증마저 잊힐 정도였지
당최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서
동정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너는 내 사랑이...
여태 동정인 줄 알았을까
유교수는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김교수를 마주하려 애썼어
묻고싶은 게 한둘이 아니었거든
62
그건 김교수도 마찬가지였겠지
묻고 싶은 건 오히려 이쪽이 더했어
그러나 김교수는 제 속에서 돋아나는 그 수많은 궁금증들을 뒤로 하고
애써 유교수에게서 몸을 뒤돌리며 중얼거릴 뿐이었지

그런 거면... 많이 힘들었겠네.
교수님!
타요. 학교로 바로 가지.
아니, 잠시만... 얘기 좀 하고,
유교수.
63
나중에 얘기해. 오후에 수업 있어.
그래도......

김교수는 그 말과 함께 유교수는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운전석 문을 열었어
유교수가 거기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유교수.
...알겠어요.

제가 움직이기를 가만 기다리고 있는 김교수의 눈치를 살피며 얌전히 조수석에 올라타는 거였지
64
둘은 그렇게 원래 계획대로 함께 학교로 돌아왔을 테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어
운전대를 잡은 김교수가 아무런 말도 않길래
유교수는 슬쩍 말을 붙여보려 해봤지만
제가 운을 떼자마자 김교수는 라디오 소리를 높였어
그건 저와의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와도 같았지
65
유교수는 그렇게 상황을 회피하려는 김교수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겠다
둘 사이 어떠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는
원체 다혈질인 김교수가 제 분에 못 이겨 바락바락 열을 올리는 일이 허다했는데
이번에는 왠지...
애써 열어두었던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어디론가 숨어들려는 것만 같았거든
66
그리고 유교수는 애석하게도...
김교수가 그렇게 가시를 세우는 걸 지켜봐야만 했어
제대로 대화를 나눌 시간은 적어도 퇴근 후에 주어질 거였으니
결국 유교수는 그렇게 적막만이 흐르던 차에서 내린 뒤
묵묵히 앞서걷는 김교수를 세발짝 정도 뒤에서 따라 걷기만 했지
67
점심은 어떻게 할 거냐는 구실로 김교수에게 말을 걸어는 봤지만
김교수는 생각 없다며 곧장 거절을 놓곤 수업준비를 하러 가버렸을 거야
그렇게 각자의 연구실로 돌아간 후
유교수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역시...

[What? 난 도와줄려고 한 건데. 말수 되게 적으신 편 같길래.]
...일단 알겠어.
68
제가 자리를 비웠을 때
김교수와 우교수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파악하는 거였어
솔직히 저와 우교수가 함께 있는 모습을 김교수에게 보인 것과
그 둘만을 남겨두고 자리를 잠깐 비운 것 자체가 명백히 제 실수였지만
실은 둘이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가 제일 관건이었으니까
69
그렇게 유교수는 우교수와의 전화를 끊은 뒤
의자에 푹 기대어앉아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더래
머리는 조금 지끈거리지만... 그래도 조금 정리는 된 것 같아
그러니까... 우교수가 건넨 말들은
우리를 일반적인 동료 사이라 여기고 말한 것들이 아니었고
김교수는 그 사실을 인지조차 못했던 거였고
70
제가 김교수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는 우교수이기에
제게 했던 말마따나 도움을 주고 싶었던 것일 테지만
그 정도 발언은 조금 선을 넘긴 했으며
결국 김교수가 제게 과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아무래도...
저와 우교수의 관계성에 대해 눈치챘기 때문이라고
유교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어
71
그러니까...
내가 잘못했네
너무 방심했어
하도 무던한 사람이라 괜찮을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건 되게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야
하긴... 나 같아도...
이런 건 일반적인 관계는 아니니까......
헤어지고도 우교수와의 관계를 칼같이 끊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생각은 많았던 유교수야
72
남들에겐 그리 건전한 관계가 아니라 여겨질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저 자신은 그게 별거 아니라 생각하며 쭉 살았더랬지
우교수또한 그랬으니까
그땐 그저 잠시 정신이 나갔었다며
서로 우스갯소리로 넘기고
과거는 과거로 잘 묻어두기로 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에 대해 자각이 잘 없었던 건
73
늘 그렇게 제 곁에 붙어있는 우교수를 알면서도
제가 만났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말한 적 없었거든
연인 사이에서는 충분히 거슬리고도 남을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인데
그 어떤 누구도 제게 뭐라 해온 적 없었어
제가 상대에게 관심을 쏟는 만큼 되돌려받은 적 없었으니 당연했지
74
그랬기에 유교수는 지금 김교수가 보이는 반응이 유독 낯설었을 거야
제가 여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사고방식으로 쭉 살아온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게 제 사랑을 의심하기까지 해야 하는 일인지
냉담하게 돌아온 반응에 어쩔 수 없이 속이 상하기도 했지
그게 다 저를 너무 사랑해서라는 것을 모르고
75
.
.
.
그리고 그날 늦은 오후
유교수는 퇴근하기 전 김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어
퇴근 후 이야기를 나눌 생각으로 온종일 업무에 집중이 안 됐던 터라
유교수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 어려있었지
그러나 유교수는 잠시 뒤 들려온 김교수의 문장에 입술만 꾹 말아물게 됐어

늦어요. 먼저 가.
76
저와 아직도 대화를 하기 싫은 건지
아님 정말 일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교수는 제게 눈길도 안 주고서 저를 먼저 집으로 보냈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도 못했어
그조차 김교수에게 부담이 될까 봐
유교수는 홀로 집으로 돌아간 뒤
그저 멍하니 현관 쪽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지
77
그렇게 김교수가 집에 들어온 것은...
거의 하루가 넘어가기 직전이었을 테고

왔어요? 많이 늦었네...
...바빴어.

유교수는 무미건조한 답을 내놓는 김교수의 곁에 천천히 다가가봤지만
김교수는 딱히 할 말이 없다는 듯 시선을 돌리며 곧장 씻으러 들어가려는 듯했어

교수님, 있잖아요...
씻고.
78
그리고 유교수는 차마 그걸 막아서지 못했지
고분고분히 몸을 뒤로 물린 뒤
김교수가 씻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내내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댔어
그러나...

교수님, 오늘 낮에요...
유교수.
...응?
내일 하면 안 되나.
...
피곤해서.
...응. 알겠어요.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79
감정이 많이 상한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일에 지쳐 피곤한 얼굴이기도 해서...
유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교수가 원하는 대로 내일을 기약했어
그러나 그 다음날이 되어도
또 그 다음날이 되어도
김교수는 도통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었지
누가 봐도 티 나게 온몸으로 거부했어
80
그러나 외적으로는 너무도 태연히 굴었지
아침에 일어나 먼저 출근하면서는
늘 그렇듯 저를 꼭 안아주고 나섰고
눈치를 보며 뽀뽀해달라 읊조렸을 때는
제 얼굴 곳곳에 따스히 입을 맞춰주기도 했어
그럼에도 제 눈에는 다 보였지
아무리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한대도
김교수는... 차차 말라가고 있었어
81
입맛이 없다며 점심은 싹 다 거르고
같이 하는 저녁 식사마저 밥을 다 남기고...
유교수는 그 좋아하는 메론빵을 사다주며 조심스레 기분을 풀어보려고도 했지만
다음날 그 메론빵은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냉장고에 그대로 들어가 있었지
그렇게 유교수도 가면 갈수록 애가 타서 미칠 지경이더래
82
차라리 티를 내지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지
이런 식으로 사람 피 말리는 짓은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 됐을 거야
축 처져있는 김교수의 작은 어깨를 바라보는 것조차 죄스러웠지
제가 대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말랑하게 만들었는데...
하루아침에 다시 버석해진 그 모습을 마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
83
그래서일까
김교수가 그렇게 제 눈을 피한 지 나흘 째 되는 날
유교수는 퇴근 후 김교수의 연구실로 들어섰어
오늘도 늦게 퇴근하냐는 물음에 김교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저녁 약속이 있다는 말엔 잘 다녀오라며 짤막하게 답했지
유교수는 그 반응에 부러 몇마디 말을 덧붙였더래
84
오늘 거기 가려구요. 교수님이랑 몇번 갔던 일식집.
그래.
우리 가족이 다 먹는 건 잘 안 가려서. 그런 건 참 좋은 거 같아요. 아무데나 데려가도 잘 먹더라구.
다행이네.
응, 그쵸.
...
교수님. 혹시 생각 있으면, 다음에는...
유교수.
응?
늦겠다. 일곱시까지라며.
아... 응. 가야지, 이제...
85
다음에는... 교수님도 같이 가면 어떻겠냐고 묻고 싶었는데.....
유교수는 건네고 싶었던 말을 다시 입속으로 꾹 삼킨 채
저녁 잘 챙겨먹으라는 버릇같은 말만 남기고서 연구실을 나섰어
그렇게 가족과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면서도
유교수의 머릿속엔 온통 김교수 생각 뿐이었겠지
86
...너도 이 단호박 튀김 좋아하는데
저녁은 잘 챙겨 먹었을까 모르겠네.....
겉으로는 하하호호 웃으며 술잔을 가볍게 맞부딪히고
요새 김교수랑은 어떠냐는 부모님의 질문에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교수는 정작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어
그래서인지 결국 집으로 돌아가면서는 명치께가 답답하기도 했지
87
그러다 도저히 견딜 수 없겠던지
유교수는 집앞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하나 사다 먹기까지 했어
그러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김교수였지
제가 이렇게 또 체한 모습을 보면 더 마음 아파 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조차 유교수는 김교수 생각만 했어
정작 제 속이 이렇게 된 이유조차 김교수였음에도
88
유교수는 그렇게 복잡한 속을 겨우 달래놓고
천천히 집으로 걸음을 옮겼을 거야
내일 주말이네...
넌 또 주말이라고 늦잠을 자려나
그래도 이제 제대로 대화를 나눠봐야 하지 않을까
그럴 거면 차라리 오늘 하는 게 나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유교수는 평소보다 느릿한 손길로 도어락을 꾹꾹 눌렀지
89
그렇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고
반쯤 열려있는 중문을 드르륵 당겨내면서
유교수는 부러 웃으면서 김교수를 찾았어

교수님, 나 왔어요. 오래 기다렸지. 저녁은 먹었어요?

제 속이 상한 것은 절대 들키지 않게
평소처럼 싱긋 미소를 띠고서 불이 밝혀져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지
90
그러나 유교수의 시선 끝에 걸린 건

뭐야...... 혼자 마시고 있었구나.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온더락 잔에 찰랑일 정도로 남은 위스키와
그보다 조금 더 안쪽 소파에 푹 기대어있는 김교수의 조금 붉은 얼굴이었어

웬일이래... 자기 술 안 마신 지도 좀 됐으면서. 오늘은 마시고 싶었어요?
91
유교수는 생각지도 못한 김교수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내 서글서글 웃으며 한걸음 두걸음 다가갔지
오늘 가족이랑 어떤 얘기를 했는지
어떤 음식을 보고 네 생각을 했는지
그 몇 안 되는 발걸음 동안 재잘재잘 떠들며
유교수는 김교수의 앞에 다가가 섰을 거야

아구... 자고 있나...
92
그러나 유교수는 머지않아 멈칫하며 눈썹을 들썩였지
김교수는 두 눈을 감은 채 새근거리는 숨만 내뱉고 있었으니까

왜 여기서 이러구 자...

유교수는 그런 김교수를 내려다보며 애써 웃음짓곤
나지막이 김교수를 달래듯 깨웠어

교수님. 교수님? 에구... 방에 들어가서 자요, 응?
93
그 음성에 김교수는 머지않아 게슴츠레 눈을 떴고
유교수가 저를 일으키는 손길에는 얌전히 몸을 맡겼어
그렇게 무사히 안방에 들어간 뒤
유교수는 김교수를 천천히 눕히며 그랬지

딱 보니 저녁 안 먹었네. 왜이리 가벼워...

그 말에도 김교수는 무거운 눈꺼풀만 겨우 꿈벅였을 거야
94
유교수는 결국 오늘도 김교수와 대화를 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했겠지
그래서 별다른 말 없이 이불을 꼭꼭 덮어주곤 저도 이만 씻으러 가려 했어

어엇...

그러나 제가 몸을 반쯤 뒤돈 순간
유교수는 제 손목을 덥석 붙들어 당기는 감각에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지
하마터면 또 발목이 꺾일 뻔 할 정도의 위력이었어
95
그때 접지른 발목이 이제야 좀 괜찮아진 것 같은데...
유교수는 안도감에 저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겠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안도하는 사이
김교수는 어느덧 몸을 일으켜 앉고는 제 손목을 더 강하게 당겨냈어

유교수...

그리고는 중얼대며 제 어깨에다 이마를 콩 갖다박았지
96
유교수는 갑작스런 그 행동에 웃음을 참지 못했을 거야
...뭐야
갑자기 귀엽게 이러는 건 반칙이지......ㅎㅎ...
부디 김교수가 피식 새어나온 제 웃음을
놀리는 거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유교수는 김교수가 기대기 편하도록 자세를 고쳐앉았어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올려 김교수의 등을 살살 쓸어주었지
97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모르게
김교수와 맞닿아있는 모든 곳이 뜨끈거렸지
유교수는 김교수의 다음 말을 가만히 기다리며
그렇게 한참동안 김교수의 등을 토닥여주기만 했더래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김교수에게선 이어지는 말이 없었고
끝내 새근대는 숨소리가 들려오길래 다시 눕혀주려던 찰나

좋아해...
98
제게 폭 파묻혀있는 그 머리통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불쑥 튀어나왔어
유교수는 그 뜬금없는 고백에 눈이 조금 동그래졌지

응? 갑자기 뭐야, 간지럽게...ㅎㅎ
...
나두요. 나두 좋아해.

그러나 이내 저또한 그 말에 걸맞는 답을 내놓았어
망설일 필요라고는 없었지
99
그리고 한편으로는 긴장이 탁 풀리기도 했대
아무리 저와의 대화를 피하려 든다 해도...
제게 건네는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말해줬거든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유교수는 김교수가 제 목덜미에다 색색 내뱉고 있는 뜨끈한 숨결에 괜히 열이 확 오르는 것 같았대
100
좋아한다고...
응, 응. 나도 좋아해.
...진짜야...
응, 나도... 나도 진짜 좋아해.

계속되는 김교수의 그 조곤조곤한 고백들에
유교수는 몇 번이고 다 꼬박꼬박 답해주었겠지
그러나... 어느 대답 하나를 기점으로
김교수에게선 대뜸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나왔어
그와 동시에 유교수는 화들짝 놀라 제 몸에서 김교수를 떼어냈겠지
101
그리고 다급히 확인해 본 김교수의 두 눈에는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혀 있었어
유교수는 그런 김교수를 어쩔 줄 몰라 다시 제 품에 꼭 안아내는 것밖에 못했지

왜... 왜 그래요, 갑자기... 걱정되게...
...
왜애... 응? 왜 서러워... 내가 그럼 자기 안 좋아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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