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게 후회물 #엋건 #청려건우 👤여보세요. 신재현 애인분 맞으세요? 📷...헤어졌는데요 👤예? 아, 헐. 죄송합니다!...

@sin__mu_
당최(반동결)🕯@sin__mu_
30 views Sep 23, 2026 ~17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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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게 후회물 #엋건 #청려건우

👤여보세요. 신재현 애인분 맞으세요?
📷...헤어졌는데요
👤예? 아, 헐. 죄송합니다!
📷아뇨, 무슨 일로...
👤그, 얘가 지금 취해가지고 데리러 와주실 수 있나 하고... 애인이라 저장돼있어서 애인분이신줄...
📷...거기 어딘데요?
👤예? 아, 오시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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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을 처음만난건 미팅에서였음. 원래 그런 데 안나오는 류건우는 인원수만 채워달라는 부탁에 나오게 된거였는데, 어쩌다보니 술자리까지 함께하게 됨.

부어라 마셔라 하다가 어느 순간 필름이 끊겼고, 정신을 차렸을 땐 침대 위였는데... 자기 방이 아니라 모텔이었고, 옆에는 신재현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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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 나갔다가 저 좋다는 여자애들 다 무시하고 웬 남정네랑 자버린 거임. 미쳤나. 심지어 보니까 얼굴 잘나다고 유명세 탔다던 신입생임. 복학생이 이제 고등학교 졸업한 놈이랑...

그렇게 자괴감에 젖어서 둘 다 성인이고 먼저 키스한 건 쟤니까 좋게 넘길까. 그런 생각하는데 신재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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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즐길 거 다 즐겼으니 먹고 버리겠다는 건 아니죠?

하면서 처연하게 눈 내리깜. 아니 네가 먼저 키스했잖아... 네가 박았잖아... 어이없는데 또 얼굴 보니까 양심이 네가 사람 새끼냐며 지랄을 떨어대서 결국 울며겨자먹기로 사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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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성인의 책임감... 같은 것 때문에 억지로 시작된 연애였지만, 둘은 꽤 순탄한 연애를 해나갔음. 대충 성격도 비슷하고, 취향도 비슷하고, 침대에서 성사된 연애인만큼 스킨십에도 거리낌이 없었고.

맨날 보다보니 객관적으로 이쁜 걸 넘어서 주관적으로 귀여워질 지경에까지 와버린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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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런 연애를... 한 4년쯤 했나. 반강제로 시작한 거 치고 참 길게 갔지. 오래 알고 지낸 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게 되기도 했고...

📷오늘 컨디션 별로야? 좋아하는 거 먹으러 갈래?
🫐...오늘 상태 별로인 거 어떻게 알았어요?
📷그냥 보이잖아
🫐...하하

보통은 몰라요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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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그럼 사람들 눈이 안 좋은가 보네.
형이 날 너무 사랑하나봐요.

그럴 수도 있고. 뭐 먹을까. 아님 오랜만에 집에서 데이트할까?
...

왜 가슴 가려. 상태 안 좋은 애랑 어떻게 해보려 하겠냐.
술 취한 애는 괜찮고요?

아니, 네가 먼저 키스했잖아;; 술버릇 좀 고쳐라 아직까지도 그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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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지나서 연애초의 풋풋함이나 설렘같은 게 사라졌어도, 둘 사이엔 오래 사귄 커플 특유의 안정감과 편안함 같은 것이 있었음.

류건우는 그게 어쩔 때는 어색하면서도 좋았어. 정말 가족 같았거든. 이런 관계가 자기한테 생길 거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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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되게 고맙고, 더 소중히 대하게 됐음.

그리고 그렇게 깨지지 않을 것 같던 관계는... 신재현이 복학하며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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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이 복학하고서 부쩍 바빠진거임.

📷오늘도 바빠?
🫐네... 미안해요 형. 다음주로 미뤄야겠어요
📷내일은? 나 그때 시간 비는데
🫐그때는 팀플이 있어서...

너머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나중에 전화한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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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 뚜- 소리가 들려오는 폰을 들고 멍하니 있던 류건우... 담담히 생각함.

📷(권태기인가)

오래 사귄 커플들의 필수관문 비슷한 그것. 스마트폰을 매만지고 있다가 전화를 걸어 식당 예약을 취소했음. 가려면 몇 주전부터 예약을 해야 하는 맛집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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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 까다로운 신재현도 맛있다 했던 곳이라 오랜만에 같이 가려고 일정도 싹 비워놨는데...

류건우가 한숨을 푹 쉬었음. 왜인지 요새 더 보기가 힘들어진 느낌이야. 신재현이 군대 있을 때는 꾸준히 연락도 주고받고 휴가때 항상 붙어있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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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짧게 만나고, 연락도 덜하고... 물론 둘 다 할 일 많은 성인이니만큼 이해는 한다. 하는데...

📷...

뭔가 기분이 묘했음. 그야 4년동안 해온 연애에 권태기가 찾아온다니 누구라도 찝찝하지 않겠어.

그래도 류건우는 이 시기가 잘 지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음. 그럴 자신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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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냐는 물음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거든.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안일하고 보편적인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기까진, 불행하게도 얼마 걸리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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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 노력하는 만큼 보답해주지 않더라고. 공부나 일과는 다르게.

🫐형, 다음주 말인데요... 급하게 팀플이 잡혀서요. 혹시 약속을 좀 미룰 수 있을까요?
📷...또?
🫐네, 진짜 죄송해요...

적당히 알겠다며 전화를 끊은 류건우는 심경이 복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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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잡아끌어도 너는 굳건한 것 같고, 나만 이 관계를 붙잡고 싶어하는 것 같고, 나만 놓으면 아무렇지 않게 끝나버릴 것 같고...

📷...

너는 내가 '또?'라는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였는지 알까. 부담같은 거 주고 싶지 않아서. 나만 구질구질해지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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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서운하든 불편하든 다 알아보는데. 너도 그걸 알아채주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인가?

📷...아니, 아니지.

뭔 한 마디 가지고 서운해하는 걸 눈치채. 보통 못하지, 그런 거. 좀 더 길게 통화했으면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봐줬을지도 모르잖아.

...이런 거에 위안가지는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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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보통은 모르지 그런거.

[형이 날 너무 사랑하나봐요.]

돌아보면서 세상을 다 가진 듯 웃던 얼굴이, 요새 바쁘다며 멋쩍게 웃던 얼굴과 겹쳐보였음.

...내가 널 사랑해서 네가 안 괜찮은 걸 눈치챈거면,

그럼 너는?
너는 날 안 사랑해서, 내가 하나도 안 괜찮은 거 눈치 못 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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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억측. 류건우는 눈을 질끈 감고 찌푸려진 미간 사이를 문질렀음.

요즘 많이 피곤한가봐. 나도 나이가 나이잖아 재현아. 이 나이 되니까 주책맞게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그렇다고 지금이 안 행복하다는 건 아니고,

...그냥, 좀 지쳐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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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괜찮냐고 물어봐주지 않았는데, 허공에 대고 변명을 하는 제 신세가 너무 처량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그건 틀림없는데. 사랑이 지칠 수 있던가? 그런거던가? 나는 사랑이 질리기도 전에 다 떠나가서 잘 모르겠어.

나는 네가 많이 유일해. 옛날부터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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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노력해보려는데, 그게 잘 안된다.

아니면 다 이렇게 살아? 정말 다 이렇게 사나? 권태기 온 커플들은 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모든 연애가 이런 식으로 끝난다면, 그건 너무...

거지같지 않나?

류건우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음. 어쩔까. 원래 거지같은 세상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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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지같은 세상 말고 다른 세상에서 널 사랑했어야 했다고 후회해도 이미 늦은 노릇이었어.

내가 노력하면 뭐해. 넌 그대로인데.

류건우는 그런 생각을 했음. 여타 커플들이 지지고 볶다가도 마음 식어 이별하는 게 한 순간이라지만, 우리는 다를 줄 알았지. 그래, 인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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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들떴나 보다. 믿을지 모르겠는데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야. 이상주의자, 그런 거 별로거든.

근데 네가 날 그렇게 만들었다? 이 관계에 네 책임도 좀 있다고.

...그러니까, 그때만큼 날 사랑하진 않아도 돼.
그냥 나를, 나를 사랑하면 돼.

...그게 어려우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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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늘 붙어있던 과거에 미련이 쌓여가고, 노력해도 제자리걸음인 현재에는 불만과 피로가 쌓여가고, 그런 시간과 관계가 계속 지속되던 어느 날.

🫐형, 미안해요. 정말 급한 일이라서요
📷아니야. 그럴 수 있지

너는 나한테 미안할 일이 되게 많다, 라는 생각이 드물게 들지 않았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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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

왜 별로 아쉽지가 않지. 분명 몇 주 만에 잡은 약속인데.

버티거나 참거나의 경지를 떠나 신재현의 거절이 서운하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을 때, 류건우는 깨달았음.

아, 나는 생각보다 많이 지친 모양이라고.
너한테 더 이상 기대하지 못하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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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깨달았다고 새삼스레 놀라지 않고 무덤덤한 것 자체도 류건우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주었음. 그래서 류건우는 그때부터 서서히 준비를 하기 시작함.

무슨 준비?
헤어질 준비.

그냥, 한 번 금이 간 건 다시 돌아오기 어렵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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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물건을 정리하고 기록을 지운 건 아니었고, 그냥 마음의 준비였음. 신재현이 언제 떠나가도 다시 중심을 잡아 조금만 슬퍼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그렇게 1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류건우는 신재현과의 이별을 결심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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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득이 아닌 독이 된다는 걸 어느 순간 실감하게 됐거든.

분명 신재현도 신재현만의 삶이 있을테고, 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행복해질 자격이 있으니까.

📷더 좋은 사람 만나

그런, 드라마에서나 봤던 대사를 직접 읊으면서, 전혀 웃기지 않은데 웃음이 났던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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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도 관계가 예전같지 않다는 걸 느끼고는 있었을 거야. 그래서 별 말 없이 이별을 받아들인 거겠지.

세상 모든 관계가 일방적이지는 않잖아. 아마 신재현도 나름의 노력을 했을거야. 정말 바빴겠지. 그런 걸로 거짓말 할 애가 아니니까. 내가 그런 확신을 가지게 해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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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도면 그렇게 나쁘게 헤어진 건 아니야. 우리는 서로한테 최선을 다했잖아. 나중에 길가다 만나면 인사 정도는 할 사이로 남을 수 있게 됐잖아.

너 예전에 여자친구 있었다며. 그럼 혹시 몰라. 내가 네 결혼식에 갈 날이 올 수도 있어. 그것도 너랑 나는 못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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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건우는 그 날 오랜만에 담배를 피웠음. 신재현이 알게 모르게 싫어하는 걸 알고 끊었던 것. 그러면서 나이가 무색하게 좀 울었어.

너는 나한테 미안한 게 너무 많은 사람이고, 나는 너한테 못해주는 게 너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헤어졌다. 그걸로 끝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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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로 요약되는 4년간의 연애사. 현실은 동화와 다르기에 꾹 닫힌 결말. 더 이상 펼칠 일 없을 책.

...이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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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신재현 애인분 맞으세요?

오랜만에 온 전화에 할 말이라도 있나 머뭇거리며 전화를 받았더니,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었음.

📷...헤어졌는데요

시간이 좀 지났음에도 여전히 뱉으면 가슴 한 쪽이 시려오는 문장을 내뱉었더니, 횡설수설하는 목소리가 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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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 헐. 죄송합니다!
📷아뇨, 무슨 일로...
👤그, 얘가 지금 취해가지고 데리러 와주실 수 있나 하고... 애인이라 저장돼있어서 애인분이신줄...

뒷말은 별로 들리지도 않았음. 신재현이 취했다고. 그 말에 심장이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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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은 류건우와 사귀고 나서 술을 잘 마시지 않았음. 원래 술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도 있었지만, 술버릇이 워낙 고약해서.

류건우와 술을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입술을 맞대곤 했거든. 물론 그것 때문에 사귀게 되었지만, 애인된 입장으로 걱정되는 술버릇인 건 맞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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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염려를 알아챈 신재현은 안그래도 별로 안 마셨던 술을 끊었음.

마시고 싶을 때는 류건우와 대작을 했고, 류건우가 없는데 빼기 뭐한 상황에선 한 두잔만 홀짝이다 돌아왔어. 알려달라 한 적도 없는데 얼마나 마셨고 누구랑 마셨는지까지 줄줄이 보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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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애인의 행동이 너무 잡혀사나 싶어 조금 짠하면서도 귀엽고 고마웠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누구한테 너 취했으니 데리러 오라는 연락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몇 번이고 입을 달싹이던 류건우는 결국 한숨을 쉬며 물었음

📷...거기 어딘데요?
👤예? 아, 오시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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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시동을 걸고 일러준 장소로 향할 때까지 이게 맞나 수백번을 생각했지만,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갈 뿐이지. 집쪽으로 핸들을 틀진 않았음.

그리고 도착한 류건우는 눈을 깜빡였음. 너무 경황이 없어서 잊고 있었는데, 여긴...

📷처음 만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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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만 채워주라는 동기의 제안에 못 이겨 나간 미팅에서 신재현과 술잔을 나눴던 곳.

하루 스쳐지나갈 인연이 4년동안 지속될 수 있게 한 장소.

왜... 왜 하필 여기지. 모르지도 않을텐데.

첫만남을 떠올린 류건우의 속이 울렁거렸음. 제발.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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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렁거리는 속을 꾹 누르며 들어간 곳은 불금 저녁의 술집답게 소란스러웠고, 여기저기서 안주 냄새와 술냄새가 훅 끼쳤음. 류건우는 길게 늘어진 테이블을 한 번 빙 둘러보다가 헛웃음을 내뱉음.

그 소란과 인파 속에서도 신재현이 너무 잘보여서. 테이블에 엎어진채라 얼굴은 안 보였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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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본인이 더 따뜻한데도 춥다는 핑계를 대며 비비적거리던 뒤통수가, 여름에는 덥다는 핑계를 대며 꼭 끌어안아오던 어깨가, 한 쪽 팔을 비스듬히 테이블에 걸친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너였다면 믿을래?

그 멀리서도 너인 걸 딱 알아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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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건우형!

뚫어져라 바라보던 신재현의 옆에 있던 사람이 손을 번쩍 들고 류건우의 이름을 불렀음.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류건우가 눈을 크게 떴음. 신재현과 사귀고 나서 몇 번 같이 봤던 신재현의 동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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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은,
👤어, 잠깐만요. 야! 야 일어나! 건우형 오셨다!
🫐거누형....?
👤그래 임마 건우형. 네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건우형 왔다고

웅얼거리던 신재현이 고개를 들었음.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몽롱하게 뜬 눈을 깜빡거리다가 류건우를 보더니 입꼬리가 귀에 걸린듯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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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누형이다아...
...하고, 헤실 웃는데.

잠시 말문이 막혀 우두커니 서있으니 동기가 일어나라며 신재현을 부축하고, 신재현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빠져나왔음

🫐나 보러 왔어요?

...맞는 말이긴 한데 왜 이리 속이 답답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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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이 화장실에 간 틈을 타서 류건우는 밖에 나왔음. 계속 그 안에 있다간 같잖은 향수에 젖을 것 같아서. 한숨을 내쉬자 입김이 구름처럼 피어올랐고, 그걸 멍하니 보고 있는데, 어깨를 톡톡 치는 손이 있었음

👤그, 안녕하세요

멋쩍게 웃는 얼굴. 신재현의 동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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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들었어요. 헤어지셨다고... 말을 안 해서 몰랐어요. 괜히 부른 것 같아 죄송하네요
📷...아뇨. 마침 전해줄 것도 있어서 잘 됐다 싶었어요

거짓말. 되도록 만나고 싶지 않았어. 좀 시간이 지난 후면 몰라도 지금은. 특히 여기서는. 뒷말을 삼킨 류건우가 어색하게 웃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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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붉게 달아올랐던 신재현의 얼굴을 떠올린 류건우가 머뭇거리며 입을 뗐음

📷신재현... 재현이가 뭔가 실수를 하지는...

가령 누구랑 키스했다던가. 말끝을 흐린 류건우가 침묵했음. 아, 나 꼴 진짜 우습네. 이미 헤어졌으면서 이런 걸 왜 물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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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본 동기의 표정은 의아함을 담고 있었음.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기분에 류건우가 급히 손사래를 쳤음

📷아뇨, 아뇨. 괜찮아요
👤...그으게 무슨 말씀이신지...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실언했네요 제가
👤그게 아니라... 그, 정말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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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 술버릇 엄청 얌전해요. 4년전에 신입생 환영회에서 취한 걸 처음 봤는데, 그냥... 자던데요.

주량 모르고 마셔대다가 흑역사 적립한 애들 사이에서 자기 혼자 잘만 자더라고요. 그게 그냥 죽을듯이 자는 것도 아니고, 깨우면 일어나고 필름도 안 끊기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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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면 대답도 잘하고... 모르셨어요?
📷...신재현 술버릇이 그냥, 자는거예요?

그럴리가 없는데. 무심결에 뱉은 말이 허공에서 입김과 함께 바스라졌음. 그야, 그럴리가 없잖아. 걔가 그것 때문에 4년동안이나 나 없는 자리에서 술을 안 마셨는데. 또...
51
처음 봤을 때도 그렇고, 나랑 술만 마시면 안기고 비비적대고 쪽쪽거리고 난리를 떨었는데.

형 너무 좋아요, 사랑해요, 나한테 형밖에 없는거 알죠, 온갖 간지러운 말 다 하고, 헤실헤실 웃고...

[너 어제 술 마셨을 때 나한테 자기야, 라고 했는데]
[...내가요?]
[어. 기억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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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요. 그때 아직 안 취했었어요]
[술에 취하지도 않았는데 왜 자기야 랬어]
[...술기운을 빌려야 할 수 있는 것도 있어서...]

아.

과거의 편린을 떠올린 류건우가 침음성을 뱉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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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때 그냥, 안 취한 거였어?

나 이쁘다고 한 거, 나 끌어안은 거,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한 거, 얼굴 맞대고 어떻게 조금이라도 안 이쁜 구석이 없냐고 웃은 거, 나한테 키스한 거 전부,

그냥 다 네가 하고 싶던 거였어?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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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건우가 말문을 잃고 숨이 턱 막혀 가만히 허공만 응시하던 그때, 동기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음

👤...최근에 조금 바뀌긴 했지만...

꿈에서 깨어난 듯 눈을 번뜩 뜬 류건우가 고개를 돌렸음. 눈이 마주치고 아차한 얼굴이 된 신재현의 동기가 입을 꾹 다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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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아니, 그, 죄송해요. 못 들은 걸로 해주시면 안될까요
📷아뇨

들려주세요. 저도 모르게 한 발짝 성큼 다가간 류건우가 끊어질 듯한 음성으로 내뱉었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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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간절한 시선에 갈팡질팡하다 마른 세수를 한 신재현의 동기가 앓는 소리를 내곤 입을 떼었음

👤그냥... 걔가 얼마 전에 술마시자고 저를 불렀거든요. 평소엔 몇 잔 홀짝이다 가는데 그땐 계속 달리더라고요. 그러다 결국 엎어지길래 취했구나 했는데 계속 뭘 웅얼거리길래 뭔가하고 들어보니까,
57
[건우형... 건우형 보고 싶어...]

그러면서 걔가 그, 울어가지고...

머뭇거리며 덧붙여진 말에 류건우가 숨을 멈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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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서럽게 울길래 뭘 물어보질 못하겠더라고요. 걔가 그렇게 울 수 있구나 그때 알았죠. 워낙 무던한 애잖아요. 표현도 적고.

📷...

[형, 자기야. 나 좀 봐요.]
[자기? 나 말하는거야?]
[그럼 여기 자기 말고 누가 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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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건우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쥔 신재현이 말했었음.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예쁘지?]
[취향이야?]
[완전요]
[네 취향이라 다행이네]
[그래요?]
[그래서 사귀고 있잖아]
[좋은 건 맞는데, 그거 때문에 사귀는 건 아니에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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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다정한 사람이잖아요]
[...딱히...]
[아니에요.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는 형이 다른 모습이라도 언젠가 형을 사랑하고 말았을 거에요.

[...너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해]
[부담스럽나?]
[조금?]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건 형 자체거든요]
61
📷...그렇게,

표현이 인색한 애는 아니었는데.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죽는병에 걸린것처럼 굴었는데.

그러고보면 신재현은 웃고 싶지 않을 때 웃는 그 특유의 습관같은 웃음을 걸친 얼굴로 타인을 대했지. 언젠가 멀리서 본 그 모습이 낯설어 부르길 주저했던 적이 있었는데,
62
신재현은 어떻게 알았는지 고개를 돌리곤 나와 눈이 마주쳤었어. 그리고... 그때서야 평소같은 얼굴로 웃으면서,

[형, 나보러 왔어요?]

...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63
류건우는 마른 세수를 했음. 손가락 사이로 하얀 입김이 흩어지고, 물기가 서렸음.

이제서야 깨닫는 건데, 사실 깨닫기보다 실감하는 건데.

너한테도 나는 많이 유일했겠구나
지금도 그렇구나...
64
👤...형, 괜찮으세요?
📷...

이상하지. 괜찮은 척엔 자신이 있는데, 입을 뗄 수가 없었음. 이 기분이 뭔지. 너무 아프다가도 기쁘고, 슬프고, 억울하고...

미안해서...

👤...이럴까봐 말 안 하려고 한 건데... 죄송해요

📷아뇨, 아뇨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별 거 아니에요. 그냥...
65
📷...그냥, 조금...

그때, 가게 문이 딸랑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들렸음. 시선을 측면으로 내리던 류건우는 그 소리에 눈을 정면으로 돌려 동기의 너머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붉은 눈가로 제 쪽을 빤히 응시하는 신재현과 눈이 마주쳤음
66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한 순간 잦아들고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은 적막 속, 류건우의 눈이 크게 뜨였음

말을 멈춰야 하는데. 이 거리면 다 들릴텐데.

그럼에도 생각보다 빨리 열린 입은 무의식 중 자신도 자각하지 못했던 가장 깊은 부분을 입밖으로 내뱉고 있었음
67
📷그냥, 좀...
🫐...
📷...보고싶어서...

아. 신재현의 얼굴을 보던 류건우가 입을 꾹 다물었음. 저 얼굴을 본 적이 있는데. 헤어질 때.

웃으며 울던가. 울며 웃던가. 웃듯 울던가. 울듯 웃던가...

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류건우가 숨을 멈췄음.

우는구나.
내가 널 울렸구나.
68
동기가 눈치를 보며 자리를 옮기고, 둘은 한적한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음. 차를 조금 멀리 주차해놓은 탓이었음.

📷...오랜만이네
🫐네

오랜만이네요.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흩어지고, 류건우가 입술을 꾹 깨물었음
69
📷잘 지냈어?

신재현은 눈을 두어번 정도 깜빡이다가, 이내 아까와 같은 목소리로 덤덤히 말했음

🫐아뇨

순간 포커페이스가 깨질 뻔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선...

📷...그래?

라고 말하고, 또 잠시간의 정적. 차가운 공기를 신재현의 목소리가 뚫었음.

🫐형은요?

형은 잘 지냈어요?
70
📷...나야 뭐, 잘 지냈어

류건우의 얼굴을 빤히 보던 신재현이 툭 내뱉어

🫐거짓말
📷...
🫐...여전히 연기에는 재능이 없으시네요

알아줬으면 할 때는 모르더니, 왜 이제서는 그리도 잘 알아채는지.

류건우가 옅은 한숨을 쉬며 걸음을 멈췄음.
71
그리고 이 한겨울에 점퍼 하나 안 걸친 신재현의 빨간 코끝을 보고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짓다가, 팔에 걸치고 있던 코트를 슥 내밀었음

📷가져가. 네 코트. 전에 왔을 때 두고 간 거
📷...이거 전해주려고 온 거야. 다른 뜻 없어

여기서 네 집 안 머니까, 혼자 갈 수 있잖아
72
코트를 받아든 신재현이 멍하니 류건우를 바라봤음. 류건우는 돌아서려다가, 술에 취해서인지 추워서인지 몰라도 붉은 끼가 감도는 얼굴을 힐끗 보곤 지나가듯 내뱉었음

📷...걸치고 가. 추위 많이 타잖아

신재현의 눈이 일렁였음.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지만, 맞춰오는 시선은 없었음
73
매정하게만 보이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신재현이 숨을 들이쉬고 말했음

🫐미안해요

그 정도 거리에서 들으라고 작정한 듯 선명한 목소리였음. 류건우의 발길이 우뚝 멈춰섰음.

그냥 지난 일이라고 둘러댄 뒤 떠나면 될 일인데, 그런데...
74
[형, 나보러 왔어요?]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오히려 미안한 건-

📷...뭐가. 뜬금없이...
🫐오랜만에 잡은 약속 파토낸 거, 안 괜찮은 거 눈치 못 챈 거, 소홀했던 거, 형한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거. 전부 다요
📷괜찮아. 이미 끝난 일이잖아

이게 맞을 거야. 널 위해서도, 날 위해서도.
75
그런 결심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았는데. 그러니까 분명 쉽게 무너질 게 아닌데

🫐전 끝내고 싶지 않아서요
📷...
🫐...형

우리 다시 만나면 안 돼요?

기어코 듣게 된 말에 류건우의 가슴이 철렁했음.
아, 이래서. 이래서 널 가급적 보고 싶지 않았는데.
76
목이 매여 말을 잇기 힘들었지만, 류건우는 입을 뗐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잖아
🫐저도 간단하게 얘기하는 게 아닌데요
📷너 지금 취했어. 다음에 얘기하자
🫐다음 언제요?

류건우가 인상을 찌푸렸음. 뒤돌고 있는 탓에 얼굴이 안 보인다는 게 다행이었음. 울 것 같았거든
77
📷...이거 그냥 미련이야. 분명 후회할 걸

네가 아직 세상을 덜 살아서 그래. 세상에 좋은 사람이 참 많다? 너는 나보고 좋은 사람이랬지만, 사실 그게 아니야. 내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면 널 더 이해했줬을거야. 상처주지 않았을거야.

그러니까 널 울리는 사람 말고 웃게 하는 사람한테 가
78
🫐형

아. 분명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 않음에도 류건우는 어쩐지 신재현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을 거 같았음.

목소리에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을 정도의 물기가 서려 있었거든

류건우의 가슴이 욱신거렸음. 신재현은 다시 한 번 그를 불렀음. 형.
79
🫐나는요. 형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
🫐저도 나름대로 노력해봤어요. 형 잊으려고. 그게 내가 지금껏 해본 모든 것 중에 가장 어려웠어요.

이어지는 신재현의 목소리는 그를 불렀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담담했지만, 와중에도 미처 감추지 못한 떨림이 느껴졌음
80
🫐형이랑 헤어지자마자 귀신같이 시간이 널널해지더라고요. 세상이 날 놀리는건가. 그렇게 남아도는 시간으로 뭐든 해보려고 했어요. 별에 별 걸 다 해봤어요. 뭐든간에 미친듯이 몰두하고 싶어서. 형을 잠깐이라도 잊어보려고.

📷...

🫐...근데요 형. 뭘 하는 와중에도 형이 생각나더라고요
81
수업을 들을 때도, 걸을 때도, 누군가와 얘기할 때도, 집에 들어갈 때도, 해나 달을 볼 때도 형이 떠오르는데 어떡해요. 내 낮과 밤이 전부 형인데 어떡해요

🫐다른 사람들은 이별하면 술을 마시잖아요. 그래서 나도 마셔봤는데, 그것마저 안되더라고요. 4년 내내 술은 형하고만 마셨으니까...
82
🫐이럴거면 나한테 그렇게 다정하게 굴면 안 됐죠. 떠날거면 형을 잊는 방법도 같이 알려주고 갔어야죠.

나는 형이 전부인데. 전부가 됐는데. 담담한 척 하려 했지만 앓는 듯한 목소리였음. 류건우의 눈이 일렁였음.

🫐...형은 내 생각 안 났어요?
📷...
🫐...단 한 번도?
83
여기서 없다고 말해야 이 관계는 여지를 남기지 않고 끝날 수 있겠지.

다 그렇게 살잖아. 영원한 건 없잖아. 세기의 사랑도 언젠가 식고, 끝나고, 이별하고. 그러면서 다 잘만 살잖아. 너도 그렇게 괜찮아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없는 너는 다른 사람 곁에서 웃고,
...네가 없는 나는...
84
📷...났어

류건우는 결국 쥐어짜는 목소리로 답했음. 났어. 네 생각. 계속 났어. 내 세상이 온통 너였어. 그런 뒷말은 애써 꾹 눌러담으면서.
85
그렇게 둘 사이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음. 주위가 한적하긴 해도 조금만 더 가면 번화한 거리라 희미하게 소음이 들려야하는데도, 머리가 멍하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때, 소매자락을 휙 하고 잡아오는 손길이 있었음. 류건우는 고개를 돌렸고, 그때서야 신재현을 마주봤음
86
🫐그럼, 나랑 같이 살아요
📷...뭐?
🫐다시 안 사겨도 괜찮아요. 같이 살아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안 해도 괜찮아요. 그냥 내 눈이 닿는 곳에 있어줘요.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류건우가 가늘게 뜬 눈으로 신재현을 응시했음. 아무리 봐도 진지한 얼굴이 들어찼음
87
📷...신재현
🫐...그렇게라도,

그렇게라도 옆에 있고 싶단 말이에요. 신재현이 울었음. 간간히 훌쩍거리고, 소매를 쥐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벌건 눈가를 비비적거리면서. 류건우가 입술을 꾹 깨물었음

뭐 그런 게 다있어. 전애인과의 동거라니. 근 1년간 들은 말 중 제일 황당한 소리였음
88
📷...

헝클어진 머리, 진동하는 술냄새, 부은 눈가, 빨간 얼굴, 훌쩍거리는 소리... 그런 것들이, 평소에 보던 모습과는 거리가 많이 멀었는데.

덩치가 산만하면서도 차마 손을 못 잡고 소매만 꾹 움켜잡는 게, 조용히 올려다보는 눈빛이, 널 구성하는 그 모든 게 아직까지도 너무 애틋해서...
89
류건우는 홀린 듯 손을 뻗어 계속 눈가를 비비적거리는 신재현의 손을 잡고, 자신의 앞으로 가져왔음.

📷그만해. 눈가 다 헐겠다
🫐...형

자신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신재현을 보고 류건우는 옅은 한숨을 쉬었음
90
있지.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어. 상대가 잘생기거나 예쁘다고 느껴지만 그때까지는 괜찮은데, 객관적으로 별로 귀엽지도 않은 상황에서 귀여워보이면 그땐 좆된 거라고.

아무래도 나 단단히 좆됐나 봐.

📷재현아

나랑 결혼할래?
91
🫐...네?
📷아니 뭐, 싫음 말고. 그냥 말해본거야.

류건우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거리자, 신재현이 본능적으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음

🫐아뇨. 좋아요
📷그, 고민은 좀 해보는 게 어떨까...
🫐아뇨. 제가 왜 사치스럽게 고민같은 걸 해요?
92
동성결혼 합법화되는 법안 추진 중이라던데 기다릴까요? 아니면 외국으로 건너가서 할까요? 일단 반지부터 맞추는 게 좋지 않겠어요?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까요.

이때다 싶어 말을 줄줄 잇는 신재현의 모습에 류건우가 헛웃음을 뱉었음. 지금 제정신 아닌 거 같은데...
93
📷재현아, 재현아. 나 봐

류건우가 신재현의 두 손을 깍지 껴서 잡았음. 서늘한 두 손이 겹쳐지고, 신재현이 놀라 퍼뜩 눈을 떴음

🫐...형
📷그래
🫐진짜요? 진짜에요? 정말 우리 다시 사겨요?
📷...네가 원한다면...

슬금 시선을 피하는 류건우를 보고 신재현이 숨을 들이켰음
94
🫐고마워요

신재현이 류건우를 꼭 끌어안았음. 순식간에 손이 어정쩡한 허공에 놓이게 된 류건우가 눈을 끔뻑였음

🫐내가... 내가 진짜 잘할게요...
📷...내가 상전도 아닌데 뭐
🫐괜찮아요. 고마워요...

류건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신재현을 마주 끌어안았음.
95
📷재현아
🫐네
📷...내가, 내 생각보다 널 더 많이 좋아했나봐
📷너도 내 생각보다 날 더 많이 좋아해줬고
📷그래서 고맙고... 미안해

류건우가 입을 달싹이며 신재현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음

📷쉽게 포기해서. 상처줘서.
🫐...
📷그리고 그런 주제에 다시 한 번 욕심을 내서...
96
류건우가 고개를 들고 측면으로 눈을 마주쳤음.

📷그래서, 많이 미안해

조용히 류건우를 끌어안고 있던 신재현이 팔에 힘을 풀고 제 쪽으로 기운 류건우의 팔을 지탱했음. 둘의 눈이 마주쳤음. 둘 다 눈가가 붉디 붉었음
97
🫐난 미안하다는 말보다... 다른 말이 더 듣고 싶은데요

무슨 말? 알잖아요. 시선이 오가고, 감정이 오가고, 온기가 오가고. 류건우가 입을 뗐음

📷사랑해

신재현은 그제서야 웃고는, 류건우의 양어깨에 팔을 걸치고 목을 끌어안았음
98
키스해도 돼요?
...지금은 안 취했지?
네

멀쩡해요. 귓가에 속삭이듯 하는 말에 건조한 입술이 호선을 그리고, 바람 빠지듯 웃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아스팔트 보도 위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겹쳐지고...

돌고 돌아 행복해진 연인이 가로등 아래에서 웃었다
99
끝.
100
이로써 완결 낸 썰이 하나 더 늘었네요 예이~
아마 소설체로 다듬어서 포타에 발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르케 되면 에필로그? 외전? 같은 느낌으로 뭐라도 더 첨부할 예정(많관부)
101
원래 해피엔딩 낼 생각이 없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자식들 절대 행복해야한다고 손이 멋대로 해피엔딩을 쓰고 있던 거에요...(본인이 쓴 글에 과몰입하는 사람이 있다?)

여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네요... 결말이 만족스러우실지 모르겠지만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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