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플로만 대화하는 사이의 문대청려 보고 싶다~ 신재현은 제법 잘 나가는 아이돌이었지만 멤버 중 거진 절반이 가담해 단체로...

M - [안녕하세요.]
프로필 사진은 없고 닉네임은 자기처럼 알파벳 하나로만 해 뒀는데, 좋아하는 음악은 또 설정해 둔 특이한 프로필이었음. 어떤 인디 밴드의 곡이었는데... 신재현도 제법 좋아함.
C - [안녕. 음악을 좋아하나 봐요?]
C - [좋은 아침이에요. ^^]
답장은... 없었음.
한편 박문대는...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의 대학생이었음. 얜 젊은 주제에 꽤 보수적이어서 사실 대화 어플 같은 거... 존재는 알아도 편견이 많았음. 보수적인 주제에 인터넷은 또 많이 해서(ㅋㅋ) 커뮤니티 같은 데서 워낙 어플에서 만난 변태 썰 같은 거 자주 읽기도 했고.
🐻나 요새 연락하는 형이 있는데~
🐶어디서 만났는데?
🐻아, 어플에서.
🐶......어플?
🐻아니, 아니. 그렇게 이상한 대화는 진짜 하나도 안 했거든. 문대문대가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런 거 절대 아니다?!
🐻아~ 부끄러운데...
🐶너 만약에 아현이가 어플에서 만난 사람하고 연락한다면 어쩔래.
🐻...그건... 일단 말리겠지?(ㅋㅋ)
🐶거 봐라.
🐻아니 근데 진짜 건전한 얘기만 했거든? 봐봐.
이세진이 폰을 자진납세했음. 아무리 박문대가 통제광적 성격이 있더라도 나름 선은 지키기 때문에,
🐶만날 땐 사람 많은 데서 만나고.
🐻문대야 넌 진짜 또래면서 친구들을 애 취급한다~
프로필 사진은 없이, 이름은 문대의 철자를 따서 M으로, 좋아하는 노래 정도만 설정해 놓고 추천 대화 상대를 뒤적거림.
프로필 사진이 셀카인 사람, 몸 사진이나 성기 사진인 사람(인상 찌푸림)
박문대는 티는 안 내지만(본인은 안 낸다고 생각하는데 티 남...) 동물을 좋아함. 그리고 닉네임도 자기처럼 알파벳 하나라서 한 번 말을 걸어봄.
박문대는 어플에 대한 편견을 좀 버리고 이세진을 내버려둬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내림...
그리고 박문대는 1교시 들으면서 통학하는 갓생러였기에, 모르는 사람과 길게 대화해 본다는 일탈을 해 본 날에도 일찍 잤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이젠 볼 일 없으니 그냥 삭제하려다가... 삭제하기 전에 한 번 눌러나 봤는데,
이 사람 여잔지 남잔지(말투가 사근사근해서 여잔가? 하고 무심코 생각했다가 뇌내의 편견을 한 대 치긴 했음) 나이가 몇인지는 몰라도...
늦게 답해도, 바쁠 땐 짧게 이야기하다가 자러 가도 귀찮게 안 하니까 부담도 없었고.
처음엔 별 생각 없었는데 한 달 정도 대화가 이어지니 슬슬 의심이 들었음.
'이 새끼 혹시 백수인가?'
아무리 대화가 잘 통해도...
사실 한 달 정도 꾸준히 얘기하니까 정이 들어서 슬슬 통제광적 성격이 나오기 시작한 건데 박문대는 자각을 못 함.
C - [웬일로? 편히 물어봐요.]
M - [저는 대학생입니다만, 그쪽은 뭘 하시나 해서요.]
무슨 일 하는지까지 물어본 건 아니고 그냥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프리랜서인지 정도 물어본 거였고, C 씨는 몇 분 답장이 없었음.
C - [직장 다니다가 잘려서 좀 쉬고 있어요.]
M - [새벽에도 안 주무시는 것 같던데.]
C - [불면증이 있어서요. ^^]
C -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해서 잘 못 챙겨요.]
'이거 완전... 직장에서 무슨 일로 잘렸는진 몰라도 부당 해고였던 모양이군.'
박문대는 몇 마디의 대화로도 생활이 꽤 망가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음. 잠시 고민하다가 박문대는 메시지를 보냄.
......
선 넘었나? 꼬우면 그냥 메시지 차단하고 더 상종 안 하겠지.
보내고 나서 또 몇 분간 답이 없었는데, 박문대는 답지 않게 긴장을 좀 했음.
C - [그럴게요. 고마워요. ^^]
다행히 답은 긍정이었음.
신재현은 M 씨가 제법 분주하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음. 아마 자기 생활을 철저하게 챙기는 성격이겠구나, 나도 한땐 그랬었는데... 정도로 생각하며 M 씨가 답 줄 때마다 얼른 확인하고 회신함. 늦게 보고 늦게 답장하면 M 씨는 이미 자기 할 일 하러 가서 안 오기 때문에...
처음 찍어서 보내는 며칠 동안은 답장이 이런 식으로 옴.
M - [잘하셨습니다.]
라거나,
M - [맛있게 드셨습니까?]
라거나. 혹은,
M - [샐러드 좋아하시나 봅니다.]
이렇게.
그런데 2주쯤 이어지니 이런 답장이 옴.
이유는 모르겠지만 웃음이 터지는 답장이었음...
C - [풀 좋잖아요. ^^]
M - [밥도 좀 드시지. 저녁은 뭐 먹는데요?]
C - [저녁? 안 먹어요.]
M - [예?]
M - [아니 그럼 종일 저것밖에 안 먹는다고?]
C - [네.]
M - [앞으로 저녁도 드시고 찍어서 보내요.]
C - [알았어요. 대신 연락 자주 해 줄 수 있어요?]
M - [지금도 자주 하지 않습니까.]
음. 지금도 바쁜 시간을 쥐어짜서 날 챙겨 주나 보구나. 신재현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기울임...
C - [그럼 말 편하게 해 줄래요?]
M - [반말하라고?]
C - [응.]
M - [잘 챙겨 먹어. 그리고 이 말은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다른 직장은 언제 구하게.]
M - [알바라도 하면 좀 생활이 나을 거다. 고정적으로 가야 할 곳 있으면 식욕도 돌고 밤에 잠도 좀 잘 오니까.]
말 편하게 하라고 하자마자 잔소리부터 실컷 했음.
재밌네?
C -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M - [찾아야지.]
왠지 그 답장이 마음에 들었음. 가슴이 일렁거릴 정도로...
C - [고마워.]
M -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나 그럼 이제 과제 좀.]
🐻문대문대, 요새 누구랑 그렇게 연락해? 커뮤나 인하트에 글 쓰는 건 아닌 것 같던데~
🐶어플에서 만난 사람.
🐻뭐? 와, 너 나한텐 뭐라 그래놓고서!
🐶근데 역시 어플은 쓸 게 못 되는 것 같다...
🐻응?
🐶밥도 제대로 안 처먹고 잠도 안 자는 인간한테 걸렸어.
🐻아~ 그런 사람들 있지.
🐻뭐... 부담스러우면 대답 안 해 줘도 된다고 덧붙이면 되니까. 만나게?
🐶만나긴 뭘 만나.
어플 처음 켤 때 허용해야 하는 위치 설정을 바탕으로 랜덤 대화 상대가 뜨는 거니까, 그새 이사를 가거나 한 게 아니라면 멀리 사는 건 아닐 거였음.
M - [너 가까운 지하철역 어디냐. 싫으면 대답 안 해 줘도 되고.]
C - [그건 갑자기 왜?]
M - [물품 보관함에 도시락이랑 반찬 몇 개 넣어 놓을 테니까 챙겨가라고.]
M - [네가 괜찮으면.]
.
.
.
C - [■■역이에요.]
M - [가리는 건 있고?]
C - [기름진 거 싫어.]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이게 뭔 오지랖인가 싶었는데, 그래도 슬슬 두 달이나 매일 연락하는 사람이었으니 이 정돈 해 줘도 되는 거 아닌가 싶었음.
그래도 다음날 보관함에 먹을 거 갖다 놓고, C가 맛있게 잘 먹었다고 도시락통 비운 거 찍어서 보낸 거 보니까... 좀 뿌듯하긴 해서 기분이 묘했음.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제까지 C는 샐러드 사진 보낼 땐 자기 신체 일부 노출 절대 안 되게 했는데
사실 성적인 이유로 연락하는 상대가 아니니까 성별은 아무래도 상관없긴 했는데... 사근사근한 말투나 지독하게 샐러드만 먹는 점 때문에 (편견인 걸 알아도) 뇌내에서 여자 쪽에 가까운 이미지로 굳어져 있었는데,
박문대는 그렇게 종종 자기 생활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도시락이나 반찬을 해서 C한테 가져다 줬고, C는 그걸 받아먹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는, 이름과 얼굴도 모르는 생활이 지속됨...
***
대학생, 바쁘다, 요리를 잘한다,
좀 무뚝뚝하고 퉁명스럽지만 굉장히 다정하다.
말투는 남자인 것 같은데, 사람 잘 챙기는 섬세함과 능숙한 잔소리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스러움(ㅋㅋ ㅠ)은 여자인가 싶기도 했고.
세 달 동안 잠이 안 온다, 입맛이 없다고 징징댄 적은 두세 번 있었지만... 외롭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안 자고 멍하니
신재현은 제법 고민하다가 메시지를 보냄.
C - [좀 외롭네.]
자기가 봐도 전남친 내지는 성적인 목적으로 개수작 거는 놈 같아서 좀 우습긴 했지만...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의사 표현을 하는 사람이었으니 기분 나쁘면 욕이라도 할 거였음.
그런데 온 답장은 뜻밖이었음.
M - [통화할래?]
신재현은 자기가 꿈을 꾸나 했음...
M - [넌 말 안 해도 돼.]
M - [내가 지금 학교 녹음실인데 노래 부를 거라서.]
M - [목소리 내기 부담스러우면 일방적으로 듣기만 해.]
C - [할래요. 통화.]
신재현은 M 씨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답장부터 하고 생각을 정리함.
전화를 먼저 걸어 준 건 M 씨 쪽
너무너무 아름다운 목소리였음...
남자 인어가 있다면, 그리고 그 인어가 사람을 현혹하려고 노래를 부른다면 이렇지 않을까?
"잠들었냐? 아직 안 자면 박수 한 번 쳐 봐."
신재현은 몽롱해서 박수 같은 건 칠 상태가 못됐고... 잠잠하니까, 휴대폰 너머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림.
"좋은 꿈 꿔라."
그 말 듣자마자 의식이 탁 끊겼고, 신재현은 그대로 푹 잠이 들었음.
아, 내가... 반했구나?
박문대는 사실 노래 불러 주기까지 고민을 제법 했음.
1. '학교 녹음실'이라는 장소 정보.
2. '과제곡'.
3. 목소리.
이 세 가지 정보면 사람을 특정하는 게 무리도 아니기 때문임... 인터넷에 개인 정보 남기는 걸 싫어해서 커뮤니티나 카페도 눈팅 위주로 하고 글 자주 안 쓰는 박문대로서는
C - [재현이에요.]
M - [뭐가?]
C - [내 이름이요. 재현이니까, 앞으로는 이름으로 불러 줄 수 있어요?]
뜬금없었지만... 못 들어 줄 것도 없는 부탁이긴 했음. 문제는...
C - [M 씨는요?]
재현이? 대한민국에 족히 수천 명은 있을 것 같은 이름임. 동창 중에도 재현이가 하나쯤은 있는 것 같음.
근데 문대? 일단 박문대는 자기 외의 문대를 본 적이 없음. ㅠㅠ
문대 vs 재현이. 너무 불공평한 싸움 아니냐? 박문대는 조금 갈등했음...
C - [그래? 그럼 가명이라도 지어서 알려 줘요.]
역시 부담스럽다는데 조르는 놈은 아니어서 편했음. 박문대는 잠시 고민하다가 적당히 실존할 듯 그럴싸해 보이고, 특이하지 않은 무난한 이름을 말함.
M - [류건우라고 불러.]
C - [건우 씨. 알았어요.]
M - [어제 잠은 잘 잤냐?]
C - [덕분에요.]
M - [녹음해서 보내 줄 테니까 듣다가 자든가, 그러면.]
C - [진짜?]
M - [어. 메일 주소 좀. 듣고 싶은 노래는 있냐?]
C - [잘 때 들을 만한 거면 아무거나요. 그리고 끝에 잘 자라는 말도 붙여 줘요.]
그렇게 박문대는 C... 가 아니라 재현이의 메일로 일주일에 두어 번씩 꼬박꼬박 잔잔한 노래를 녹음하고, 끝에 "잘 자, 재현아."까지 붙여서 보내 주게 됨.
직접 요리도 해 줘, 식사하는지 마는지 체크해 줘, 틈 날 때마다 연락해 줘, 잘 때 들으라고 노래해서 보내 줘, 거의 유사 연애인데 박문대 본인은 별 자각 없었음. 그냥 내 거 만들면서 2인분 만드는 거고, 시간 내서가 아니라
신재현은 최근... 행복했음. 어느새 류건우(가명) 씨랑 연락한 지도 네 달이고... 살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데뷔하고 나서 한창 전성기였을 때 정도밖에 없는 것 같았음. 사실 신재현은 이제껏 누굴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온갖 사랑 노래 가사에도 공감을 못 했고, 또...
그만큼 매일이 설렜으니까.
신재현은 고민했음. 얼굴 궁금하다고 하면 싫어할까? 이제까지 자기랑 메시지 주고받은 상대들이 자신의 얼굴을 궁금해하면 다 차단했는데, 자기가 궁금해하는 입장이 될 줄은 몰랐음...
C - [사진 한 장만 보내 주면 안 돼요? 혼자 볼게요.]
대화 중이었는데 답장이 뚝,
C - [싫으면 안 보내도 돼요. 미안해요.]
이번엔 곧바로 답장이 옴.
M - [내일 보내 줄게]
M - [오늘은 좀 바빠서 이만 들어간다. 일찍 자고, 재현아.]
그러고 메시지는 끊김.
음, 화가 난 걸까? 그런 것치곤 밤 인사는 상냥했음.
박문대는 사진을 잘 찍는 편이었음, 그것도 굉장히. 친구들끼리 어디 맛있는 걸 먹으러 가도 음식 사진은 박문대가 찍어서 단톡방에 올리고 다들 박문대가 찍은 사진을 인하트에 게시할 정도였고, 종종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도 받음. 등록금에 보탤 때, 연예인 데이터 팔이
하지만 셀카는 찍어 본 적이 없었음... 하늘 사진이나 고양이 사진도 내키면 종종 찍는데 갤러리의 그 많은 사진 중 셀카는 한 장도 없었음.
재현이라는 애가 얼굴 궁금하다고 했을 때,
그러다가 셀카가 없다는 걸 깨닫고 혼자 찍어 봤는데 영 마음에 들게 나오질 않아서 십오 분 동안 혼자 찍어본 거였음 ㅜㅜ
'내 얼굴이 보기에 나쁘지는 않으니까.'
따지자면 호감이 플러스 되면 됐지 마이너스는 안 될 거라고
연애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음
🐶이세진, 나 사진 좀 찍어 봐라.
🐻사진을? 문대 사진을? 내가~?
🐶내가 셀카는 잘 못 찍어서.
🐻찍어 줄 순 있는데 왜? 카톡 프사하게~?
🐶그냥. 뭐... 갤러리에 나만 나온 사진 한 장도 없는 것도 좀 이상해서.
🐻오케이, 접수~ 세진이 형만 믿어~!
이세진이 박문대의 폰으로,
🐻오, 레전드 샷~ 이 정도면 문대가 찍어 준 사진이랑도 비비겠는데?
🐶진심이냐?
🐻진심은 아니긴 한데 너무 꼽 준다, 문대야.
답장은 몇 분 뒤에 왔음.
C - [예뻐요. ^^]
...음. 따지자면 중성적인 얼굴이긴 하지. 박문대는 자기 얼굴에 대한 객관화가 은근히 잘 되어 있어서,
C - [저장해도 돼요?]
M - [아니.]
원래 랜선상에 자기 흔적 남기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박문대는 칼같이 거절함. 솔직히 씹고 그냥 저장하면 모를 일이지만 그럴 놈 같지도 않고, 그런 짓을 한다고 해도 뭐 몸 사진도 아닌데 약점 될 건 없으니까...
박문대는 슬슬 낯간지러워서 주제를 돌림.
M - [네 얼굴은?]
C - [(블로그 포스팅 링크) 여기서 뭐가 내 얼굴일지 맞춰 봐요. ^^]
박문대는 포스팅을 클릭함. 근데 이 포스팅이 '주관으로 꼽은 비주얼 오지는 남연예인 15명'이었음 ㅋㅋㅋ
이 새끼 그렇게 안 봤는데 미친 나르시스트 새끼였네... 박문대는 재수 없어서 학을 떼면서 답장을 보냄.
M - [보여 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해라]
C - [진짜로 저 중에 있는데. ^^]
지랄한다.
박문대는 9시 뉴스 특보로 해체된 유명 아이돌 그룹 VTIC의 리더였던 청려의 본명이 신재현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설령 알았어도 저 포스팅에 있는 VTIC 청려가 지금 메시지 상대라고 쉽게 추측하진 못했을 거였음...
일단 예쁘고, 취향이라는 말은 진심이었음. 조금... 기대했던 것보다 지나치게 잘생겨서(무려 아이돌이었던 신재현의 눈에도!) 괜히 속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류건우 씨는... 깨끗하고 단정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음. 하지만 단순히 잘생겨서 감탄한 건 아니고...
무신경한 표정에 살짝 내리깐 눈빛, 앉은 자세는 반듯하고 곧았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인데도 조금 긴장했는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붙잡은 손등에 힘이 들어가서 핏줄이 서 있었음. 보통은 못 알아봤겠지만 신재현은 연예인이었어서 알 수 있었음...
마음 같아선 진짜 진심으로, 납치해서 감금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설렜음... 류건우 씨는 본인이 하는 게 유혹이라는 건 아냐고 따지고 싶기도 했고.
그리고, 그러고 보니 류건우 씨는 많은 걸 해 줬는데 자긴 특별히 뭘 준 적 없다는 게 떠올랐음.
C - [건우 씨가 늘 도시락 두던 자리에 선물 뒀어요. 가져가. ^^]
C - [항상 고마워요.]
M - [뭘 또 선물을... 일단 알았고, 고맙다.]
뭐 그동안 노래 불러 준 거랑 밥 해 준 거에 대한 답례라도 되는 건가? 답례를 바라고 뭔가를 준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박문대는 소박한 선물일 거라고
하지만 선물은... 적어도 수백만 원대의 고가 브랜드의 팔찌와 뭐가 들었는지 모를 USB 하나,
미친 거 아니야? 이 새낀 무슨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
사진상으로만 한 번 본 상대한테 이딴 걸 줘?
박문대는 사치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교양으로 대중 마케팅의 이해를 듣고 있었기에 연예인들의 광고 같은 걸 볼 일이 많아서 유명한 브랜드들 정도는
M - [야. 돈만이라도 돌려 주게 계좌 불러.]
C - [싫은데?^^ 그냥 써요. 탈세해서 번 돈도 아니고 깨끗한 돈이에요.]
직장에서 잘리고 로또라도 당첨된 건가, 이 새끼? 왜 벌써 몇 달째 재취직을 안 하나 했더니 돈 많은 백수였냐...
C - [건우 씨도 노래 같은 거 막 해 주는 거 아니에요. 누가 반하면 책임지기 힘들지도 모르잖아.]
M - [아니 좀]
M - [지랄 말고]
M - [너 이러다 사기 당해.]
C - [류건우 씨로부터의 결혼 사기?]
C - [사기는 나보단 건우 씨가 조심해야죠, 그리고.]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닌... 가? 묘하게 기분 더러웠지만 재현이라는 놈은 죽어도 돌려받을 생각은 없어 보였음...
M - [이거 절반은 기부한다.]
C - [마음대로 해요. 건우 씨 돈이니까. ^^]
드라마냐고.
원룸에 가서 노트북(특징: 낡아서 오락가락함)에다가 꽂아서 확인해 봤더니, mp3 파일과 텍스트 파일이었음.
mp3 파일에는 MR이, 텍스트 파일에는 가사가 들어 있었음. 곡인가? 여럿이 부르는 걸 전제로 쓰인 곡 같긴
M - [노래는 네가 작곡한 거냐?]
C - [작사는 내가 했는데 아쉽게도 곡은 아니에요.]
C - [건우 씨 목소리에도 어울릴 것 같아서요. 마음에 들면 좋겠네.]
M - [마음에 들긴 하는데... 곡만 주지 그랬냐. 팔찌랑 현금은 대체 왜 주는데.]
C - [내 마음인데? 그냥 받아.]
박문대는 반쯤 해탈해서 일단 돈의 절반은 말한 대로 기부했음. 박문대가 고아였기 때문에 기부한 곳은 고아 단체였음. 나머지 250만원으론... 일단 낡아서 맛이 가려는 노트북을 적당한 중저가 모델의 새 걸로 바꿨고, 자칫 밀릴 뻔했던 원룸 월세랑 관리비를 냈고,
돈이 있으니 좋긴 좋군... 근데 진짜 팔찌는 왜...
사진까지 봤으니 아마 박문대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걸 고른 걸 텐데, 박문대가 걸치는 옷들은 다 브랜드 있는 비싼 옷이 아니라 칠천원짜리 후드 티 같은 거라서 안 어울렸음.
장점은 단 하나,
C - [차고 다녀요?]
M - [차고 다니지.]
C - [그래요? 기분 좋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이 대화가 구라가 아니게 된다는 점 정도?
***
알고는 있었지만... 신재현은 그게 자신한테도 해당될 줄은 몰랐음.
류건우 씨와 연락한 이래로 내내 행복했던 신재현의 삶은 균열이 가고 있었다. 왜?
노래에 질린 건 아니었음. 당연히...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였음. 하지만 전에는 류건우 씨가 부른 노래를 들으면 꼭 수면제라도
혹시 몰라서 류건우 씨한테 녹음본 말고 직접 통화해서 노래 불러 달라고도 해 봤는데 그래도 별 의미는 없었음.
끌어안고 자고 싶다...
C - [만날래요?]
바쁜 건지 아니면 싫은 건지 한참 답장이 없었는데...
M - [미안. 레슨 중이었다.]
M- [만나? 어디서?]
반 년 정도 연락했고, (그쪽만 일방적으로 보내 준 거지만) 사진도 보냈고, 선물도 주고받고(그쪽이 노골적으로 부담스러워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보통이었으면 진작에 한 번 만나서 밥은 먹었을 만큼 연락을 했으니
C - [내일 우리 집에 와 줬으면 좋겠어요.]
C - [주소는 알려 줄게요.]
M - [뭔 첫만남부터 집에 불러. 내가 말했지, 너 그러다가 사기 당한다고.]
익숙한 잔소리였음... 노래는 정말 사람을 현혹하듯 감미롭게 부르는 사람인데,
C - [VTIC 알아요?]
M - [그 마약?]
하긴, 모를 리가 없지... 신재현은 씁쓸하게 웃다가, 박문대한테 선물해 줬던 팔찌랑 똑같은 팔찌를 손목에 건 채로... 셀카를 보냈음.
C - [나 자살 기도 했었다는 것도 기사 났었죠?]
C - [그래서 밖을 잘 못 나가요. 류건우 씨가 주는 도시락 가지러 가는 것도 제법 힘들었는데.]
C - [이해해 줄 수 있을까요?]
M - [?]
M - [아니 뭔]
M - [;]
M - [넌 무슨... 이런 걸 이렇게 뜬금없이 털어놔?]
🔨^^ 여보세요.
🐶...여보세요.
🔨인터넷에 찾아보면 내 영상 같은 거 되게 많을 텐데, 듣고 비교해 볼래요? 내 목소리가... 맞는지 아닌지.
🐶알았고 지금 지하철이니까 끊어.
***
C - [마음 정했어요?]
M - [주소 불러.]
C - [고마워요. 나도 뭘 좀 준비해 둘 테니까, 내일 봐요.]
반년 동안 거의 익명으로 연락한 놈의 정확한 신원을 몇 분 만에 얼레벌레 파악하고 만날 약속까지 잡다니... 뭔가 기대된다거나 설렌다기보다도 기분이 묘했음.
손수건이었음.
손수건에는 약 냄새가 났음. 아니, 씨발... ...이 새끼 진짜 뭐야? 전직 아이돌이 장기매매하려고 반 년 동안이나 연락하면서 방심시켰다는 건가? 말이 돼?
🐶...설명해.
박문대는 이를 갈면서 그렇게 말함.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정신이 없었는데, 이유가 알고 싶었음.
🔨음, 실패할 줄은 몰랐는데... 겉보기보다 힘이 세네요, 류건우 씨는.
🐶진짜 미쳤냐? 씹새끼야, 설명을 하랬지 개소리하라고 한 적 없다.
🐶아니, 이딴 짓을 왜 했는지를 설명하라고. 진짜로 신고 당하기 싫으면.
🔨아아. 이런 짓을 저질렀는데도 '왜' 그랬는지 궁금해해 주는구나. 역시 다정하네요. 조금만 덜 상냥했으면 서로에게 좋았을 텐데...
🔨음,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험한 짓을 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미친 새끼야, 약으로 사람을 기절시키는 게 험한 짓이 아니라고?
🔨내 말은, 류건우 씨를 강간이나, 살해나, 장기매매나, 인신매매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단 거예요.
🐶그럼 뭘 하려고 한 건데.
🔨끌어안고 한 번만 자고 싶었어요...
🐶...뭐?
🔨끌어안고 한 번만 푹 자고, 잠에서 깨어나서는 당신에게 사과하고, 선물을 준 다음에 돌려보내고 싶었어요. 음, 두 번 다신 나랑 연락해 주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차라리... 돈 없어서 장기를 갖다 팔려고 했다는 쪽이 납득이 될 만큼 어이가 없었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문제였음.
🐶부탁을... 한다는 선택지는.
🔨부탁했다가 거절당하면 어떡해요... 그런 건 싫었거든.
🔨이제 신고하나요?
🐶마취약 구해 둔 거 내 눈앞에서 꺼내서 다 버리고, 너... 병원에서 상담 좀 받아야겠다. 메시지로 연락할 때도 느끼곤 있었지만 이 새끼 진짜 정신머리가 정상이 아니네...
🔨나 정상 아닌 것처럼 보였어요? 이상하다. 잘 보이려고 노력했는데...
🔨약 갖다버리고 병원 상담 받으면요? 계속 연락해 줄 거예요?
🐶지금 그 소리가 나오냐?
🔨음, 그렇네. ...미안. 하고 싶은 대로 해요.
🔨...계속 연락해 주게요?
🐶어.
🔨하하,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 사기 같은 걸 조심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라니까. 너무 물러...
박문대는 참다 못해서 그냥 신재현의 얼굴을 한 대 갈겼음. 입가에 얕게 피가 맺혔음...
🔨아프네...... 고마워요. 병원 꼭 다녀올게요.
🐶그래야지 이 씨발 새끼야 양심이 있으면... 이제 네 집으로 부르지 마.
🔨내 집만 아니면 만나 주나요?
박문대는 씹고 그냥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갔음... 그리고 애꿎은 이세진한테 전화함. ㅠㅠ
🐶이세진.
🐻문대 갑자기 왜~?
🐻어? 아니, 벌써 밥 몇 번 먹고 그냥 친구로 지내는 중인데 왜?
🐶...널 마취약으로 기절시키려고 했다거나 그런 적은 없냐?
🐻문대야...... 뉴스 기사라도 본 거야? 아니면 뭔 영화? 보통 그런 일은 당연히 없지. 진정하자......
그렇지.
......
6개월 날렸군. 재수가 없으려니까......
약속대로 병원을 다녀와서 진단서랑 받아온 약을 찍어서 보내고, 심지어 박문대가 도시락을 가져다 주지 않았는데도 끼니를 같이 찍어 보냈음.
C - [답장은 안 해도 돼요. 좋은 하루 보내고요.]
그런데 왜 또 샐러드야... 슬슬 밥 해 줘야겠다.
박문대는 무심코 생각했다가 그런 스스로에게 오소소 소름이 돋았음...
...
씨발, 나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병원은 나부터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M - [내일 보관함에 도시락이랑 반찬 가져다 놓을 테니까 내일부터는 그걸로 먹고.]
C - [스톡홀름 증후군이에요?]
이 좆같은 새끼도 알긴 아네......
M - [미안한 줄 알면 내 말에 토 달지 마라. 너 진짜 좆같으니까.]
C - [네. 사랑해요. ^^]
C - [알았어요. 내가 치료 다 받을 때까지 애인 만들지 말고요. 멀쩡한 인간이 되면 제일 먼저 꼭 류건우 씨를 유혹할게요.]
M - [너 멀쩡한 인간 되면 그땐 손절해야지 내가 널 왜 봐?]
C - [간병인 자처하다가 보상도 못 받고 떨어져 나가겠단 거예요?]
M - [처맞았을 때 덜 아팠나 보지?]
M - [이름에서 따 온 거거든.]
C - [그러고 보니 아직도 류건우 씨 본명을 모르는구나. 알려 줄 수 있어요?]
박문대는... 좀 고민하다가 이제 와서 싫다고 하는 것도 우습다 싶어서 알려 줌.
C - [아하. 류건우가 낫네요.]
...이 새끼가? 지금 남의 이름 가지고... 박문대라는 이름도 나름 유니크하단 소리 많이 들었는데. 아니, 됐다... 일일이 꼴받아서 뭐하냐. 어차피 또라이 새낀데...
M - [약이나 잘 챙겨. 하루 몇 번 복용하냐?]
C - [두 번이요. 보고할게요.]
조금이라도 약 안 챙겨먹거나 병원 치료에 비협조적인 것 같으면 바로 연락 끊어야지, 이 새끼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