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창을 켰다. 상태이상의 남은 기한은 한 달. 박문대는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죽겠구나. 그 다음부터는, 상태이상을...

상태이상의 남은 기한은 한 달.
박문대는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죽겠구나.
그 다음부터는, 상태이상을 해결하는 대신 후회 없이 남은 생을 살려고 애썼다.
결국 상태이상의 남은 기한이 0이 된 날. 박문대는 차에 치여 죽었다. 다행히 큰 고통은 없었다. 잠시 눈을 감았을 뿐이다.
박문대는 눈을 떴다. 피로 젖은 아스팔트 도로, 그 도로에 널브러진 박문대가 보였다.
박문대는 상태창을 켰다. 언제나 변함없는 상태창 속, 이질적인 문구 하나.
[귀신]
: 이미 죽었으므로, 존재감이 지워집니다.
"……."
그 말 그대로, 누구도 박문대를 알아보지 못했다. 말을 걸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박문대는 테스타에게로 갔다.
박문대가 찾아갔을 때, 테스타는 박문대의 시체를 앞에 두고 울고 있었다.
"나도 죽고 싶지 않았어."
"X발, 진짜, 박문대…… 이렇게 가는 게 말이 되냐고, 우리 보고 어쩌라고……."
비록 테스타는 그중 어떤 말도 듣지 못했지만.
박문대는 괜히, 죽은 몸에 손을 뻗었다. 손은 그대로 미끄러졌다. 박문대의 몸에 다시 빙의되는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는 뭐. 정신이 없었다.
우선 팬들과 인터넷이 뒤집혔다.
-우리 문댕댕.. 네가 너무 착해서 하늘이 일찍 데려갔나 봐. 그곳에서 행복하길. # 누구보다_빛났던_우리의달 # 사랑해_문댕댕
-타팬인데 기사 보고 오열했다.... 평소 노래도 잘 부르고 어른스러운 것처럼 보여서 호감이었는데. 박문대 님 명복을 빕니다. 그곳에서 행복하세요.
테스타는 테스타대로 정신이 없었다.
한 달이 지나, 테스타는 겨우 숙소로 돌아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을 연 류청우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긴 든 모양이라고, 문대는 담담하게 생각했다.
몇 달 뒤, 테스타는 컴백했다. 곳곳에 박문대의 흔적을 흩뿌려 둔 채였다.
"……일부러 뮤비 시작에 달을 넣었습니다. 중간중간 형이 나왔을 부분을 비워두고, 127section 때의 드론과 형의 사진도 비췄고……"
"알아, 봤어."
박문대는 대답했다. 김래빈은 아무것도 모르고 유골함만 보며 울었다.
테스타는 그 컴백을 시작으로, 어떻게든 나아갔다. 여섯 명으로라도 활동을 이어나갔다.
테스타는 케이크를 사 왔다. 불을 끄고, 초에 불을 붙였다. 초는 작년보다 하나 늘어나 있었다.
까만 공간 속, 촛불이 흔들거렸다. 잠시 케이크를 응시하던 테스타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손뼉을 치며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는데도, 테스타는 꿋꿋이 노래를 이어나갔다.
문대는 노래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서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평소처럼 흔들거리기만 할 뿐.
……당연하지. 귀신이 됐으니까.
박문대는 촛농이 뚝뚝 흐르는 케이크를 보다가, 울고 있는 테스타를 보았다.
차라리 아예 사라지면 편할 텐데.
상태창을 켰다. 상태이상은 여전했다.
누가 그랬던가. 보내는 사람만큼 떠나는 사람도 힘들다고. 딱 그 꼴이었다.
죽고 나서 처음으로, 박문대는 울었다. 테스타에게 힘껏 손을 뻗었다. 닿지 못했다. 끌어안는 흉내라도 내면서 우는 게, 문대한테는 최선이었다.
***
시간이 지나며 테스타는 점점 괜찮아졌다.
테스타는 해체했다. 처음 계약한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문대는, 그 순간 내내 테스타의 옆에 있었다.
누군가 술을 들이켜 가며 앞날을 고민할 때도, 문대가 있었으면 괜찮은 해결책을 제시해 줬을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렸을 때도.
테스타는 개개인의 삶을 이어나갔다. 해체하며 만나는 횟수는 적어졌지만, 테스타는 여전히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했다.
테스타는 문대의 생일과 기일을 꼬박꼬박 챙겼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테스타는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고 있었다.
"어차피 난 먹지도 못해."
"……."
"아무리 말해봤자 못 듣겠지만."
문대는 그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듣지 못할 테지만 열심히 손뼉을 쳤다. 지인들이 모여 사진을 찍을 때에도 끼어서 찍었다. 테스타가 모여서 대화하는 걸 들었다.
"결혼 축하드려요, 형."
"글쎄…… 뻔하죠, 뭐. 무뚝뚝하게 손뼉 치면서 축하 인사 좀 했으려나. 그러면서도 뒤에서는 잔뜩 신경 쓰고, 축의금은 가득 챙겨주지 않았을까요. 걔가 티 안 나게 정이 많잖아요."
큰세진은 연하게 웃었다.
"그러게요. ……근데 전 가끔, 걔가 내내 저희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오늘도 그런 기분이라……."
"……사실, 나도 조금 그렇긴 해."
류청우가 빈 의자를 돌아보며 옅게 웃었다.
***
테스타는 노인이 되었다.
그때까지 테스타는 문대의 기일과 생일을 챙기고 있었다.
'몇 년 하고 그만둘 줄 알았는데.'
이젠 문대의 기일이나 생일이 왔다고 울지는 않았지만, 테스타는 그날이 오면 꼭 함께 모였다. 일 년도 빠지지 않고. 문대가 그 앞에 앉아 있다는 건 끝까지 몰랐지만 말이다.
가장 먼저 죽은 건 선아현이었다.
선아현은 지인들을 앞에 두고 죽을 수 있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테스타도 그 자리에 있었다.
문대는 선아현을 응시했다. 젊은 적 얼굴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주름진 얼굴.
박문대가 살아 있던 시절. 누구보다 바쁘게 달려갔던 그때.
삐- 드라마에서 많이 들어봤던, 그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돌발!]
상태이상: '영원한 안식을' 발생!
[영원한 안식을]
테스타 멤버들과 안식을
0/7
2:00:00
상태창에 쓰인 시간이 닳기 시작했다.
"……문대야?"
문대는 고개를 들었다.
젊었을 적의, 그 잘생긴 모습으로 돌아온 선아현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문대야. 문대지……?"
누군가와 상호작용하는 게, 얼마만이더라. 문대는 잠시 심호흡했다.
"보고 싶었어……."
"알아."
그동안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문대는 울먹거리는 선아현의 등을 토닥였다.
더이상 말을 더듬지 않는다는 걸 빼면, 얘는 정말 그대로였다. 외모까지 젊을 때로 돌아와서,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온 것 같기도 했다.
문대는 고개를 돌렸다. 의사 앞에 서서 울고 있는 테스타를 보았다.
"……안 울어도 되는데……."
선아현은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뻗었다. 당연히, 그 손은 테스타에게 닿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
선아현은 말없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잘 살았어?"
"……어느 정도는. 그치만 문대 네가 있었다면 더 잘 살 수 있었을 거야."
선아현은 문대의 손을 붙잡았다.
선아현은 바쁘게 온갖 말을 늘어놓았다. 문대는 선아현의 손을 꽉 잡은 채로 모든 말을 듣고, 대답해 줬다.
문대는 시간을 흘끗 응시했다.
선아현에겐, 네가 여기 있을 시간은 2시간밖에 안 된다는 얘기는 대충 해 뒀다.
"시간이 별로 안 남았네."
"응…… 근데 2시간이 지나면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건데?"
"나도 그건 아직 몰라."
"아니."
"……어?"
"난, 다른 애들 데리고 갈게."
"……."
"넌 먼저 가 있어."
'안식'이란 게 정확히 뭔지.
심지어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견딜 만 했다. 길어봤자 십수 년만 견디면 될 테니까.
머뭇거리며 팔을 붙잡는 선아현을 응시한 문대는, 옅게 웃었다.
"잘 가, 아현아."
"……응."
시간이 닳았다.
1/7
숫자가 하나 늘어났다.
아직 울고 있을 테스타에게 가 봐야 했다. 비록 문대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걸음을 옮기며, 박문대는 생각했다.
선아현과는 진짜 작별하게 됐구나. 이젠 선아현을 지켜볼 수도, 그 곁을 지킬 수도 없었다.
……박문대가 죽었을 때, 다들 이런 심정이었으려나.
'그러니 이렇게 울었겠지.'
문대는 조용히 눈가를 문질렀다. 물기가 조금 묻어나왔다.
***
몇 년에 걸쳐서, 멤버들이 한 명씩 죽었다.
문대는 멤버들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멤버들이 떠나고, 문대는 조용히 울었다.
상태창을 켰다.
5/7
남은 멤버는 두 명. 박문대 자신과, 큰세진.
문대는 큰세진의 곁을 지켰다.
벌써 5명이나 보내서 그런가. 마음이 허했다. 눈앞에 큰세진이 있는데도, 다른 멤버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이 든 큰세진은 부쩍 혼잣말을 많이 했다. 정확히는,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말을.
"보긴 했지."
문대는 대답했다. 큰세진은 아무것도 모르고, 대답이라도 듣고 싶은데, 하고 중얼거렸다.
마침내, 큰세진이 죽는 그 순간이, 찾아왔다.
[2:00:00]
숫자를 본 문대가 한 번 심호흡했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난다…….
"오냐. 박문대다."
"……."
박문대는 익숙하게 큰세진의 등을 두드렸다. 죽은 멤버들을 배웅하는 것도 벌써 6번째. 자신을 보자마자 우는 멤버를 달래는 것도 6번째다.
"오랜,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이제야……, 이제야 보네."
"그래."
한참이 지나고, 큰세진은 문대를 끌어안은 손을 놓았다.
"너 진짜, 그렇게 일찍 죽는 게 어딨어……."
"나도 뭐…… 죽고 싶어서 죽었겠냐."
"나도…… 힘들었다."
박문대는 거의 처음으로, 아무 말이나 늘어놓았다. 그동안 있었던 일, 자신이 느꼈던 감정. 큰세진은 아무 말 없이 모든 푸념을 들었다.
큰세진에겐, 이곳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2시간밖에 안 된다는 걸 대충 설명해줬다.
"2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데?"
"다른 멤버들은?"
"먼저 갔지."
"……너만 남겨두고?"
"다른 멤버들도 가고 싶지 않아 했어."
문대는 그들을 떠올렸다.
차유진과 김래빈은 같이 가고 싶다고 했고, 류청우는 조심스럽게 괜찮냐고 물어봤고, 배세진은 함께 있으면 안 되냐고 물어봤고, 선아현은 머뭇거렸었지.
……다들 떠난 후로는, 몇 년 동안이나 그들을 보지 못했고.
조금만 버티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견뎌왔지, 사실…… 그들이 조금 보고 싶긴 했다.
"넌 왜 안 갔어."
"나야 뭐…… 너랑 함께 가려고."
"……그래."
둘은 그렇게 대화를 나눴다.
시간이 닳았다. 문대가 그토록 바랐던, 사라지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몇 분 안 남았네."
"……그래."
저 시간이 다 닳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을 다시 만날 수는 있는 걸까.
언젠가 생각했듯이, 문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문대는 순식간에 시간이 닳고, 숫자가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