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솔 #요원솔음
< 돌아선 마음과 마주하는 법 > (4)
상불ㅣ권태기 후회공 최 X 저주로 시한부 된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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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미각이었어.
아무 맛도 느껴지질 않았어.
그 다음에는 후각.
"......."
솔음은 새까맣게 탄 냄비를 눈앞에 두고, 멍한 얼굴로 섰어.
바닥이 이렇게 눌어붙었는데도 탄내를 맡지 못했어.
연기가 나지 않았다면, 꼼짝 없이 불이 나고도 남았을 거야.
다행이지. 그래도 아직 눈은 멀쩡해서.
"...저주로 죽기 전에 불에 먼저 타 죽을 뻔 했네."
자조적인 농담을 던져.
그렇게라도 해야, 지금 이 상황이 조금이라도 가벼워 보일 테니까.
"이건 이제 버려야겠네."
사실 이 상황이 너무나 버거워.
사랑도 삶도.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어.
하지만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최 요원과의 사이가 여전히 좋았다면... 자연스레 헤어지기는 힘들었을 테니까.
그래도 당신은 덜 아프겠지.
그게 그나마 위안이 돼.
탄 냄비를 재활용품 통에 던져넣고, 인스턴트 죽을 뜯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렸어.
그리고 습관처럼 문자를 보내.
💬 오늘도 늦어요?
답장은 오지 않았어. 늘 그랬듯.
*
잠결에 누군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슬쩍 눈을 떠 봤더니, 최 요원이야.
잠시 옷만 갈아입으려 들렀나봐.
여전히 재난관리국 점퍼 차림인 걸 보니.
"...요원님."
솔음이 막 잠에서 깬 목소리로 부르자, 그의 움직임이 뚝 멈춰.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뒤돌아.
"...나 때문에 깼어?"
"그냥 잘 만큼 자서 깬 겁니다."
"아직 새벽 다섯 시인데, 잘 만큼 자기는 무슨."
그가 솔음의 곁으로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었어.
흉터와 굳은살로 거칠거칠한 손이 머리칼을 헤집고, 볼을 슬슬 쓰다듬어.
오랜만이야. 이런 따뜻한 손길은.
"시원해요."
"...아직도 열 있네. 약은 먹은 거야?"
"네에."
솔음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어.
꼭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
눈을 가늘게 뜨고 최 요원의 손에 뺨을 묻어. 알싸한 담배 냄새와 비누 냄새가 섞인. 최 요원 특유의 냄새가 나.
"고양이야?"
최 요원이 장난을 치듯 솔음의 코를 약하게 쥐었다 놔.
코를 찡긋거리다 손가락을 앙 물자, 낮게 웃는 소리가 났어.
오랜만에 분위기가 좋아.
어쩌면 지금이라면.
"요원님."
"응."
"언제 시간 나세요?"
"......."
아. 잘 웃던 최 요원의 얼굴이 또다시 굳어. 괜히 물어봤을까.
그래도 모르는 척 다시 물어.
"같이 데이트 못 한지 너무 오래 됐어요."
철 없는 어린 애인처럼. 자존심도 없이 그를 졸라.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눈이나 귀가 멀기 시작하면, 이제 더 이상 그를 속일 수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최 요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솔음아."
"네."
"다른 취미를 좀 가져보면 어때?"
전혀 예상 밖의 것이야.
바빠서 안 돼. 미안해. 그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요즘 너무 바빠서, 솔음이를 너무 심심하게 한 것 같다. 동아리 활동을 한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이 근처에 테니스 클럽이 있던데...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어. 사실 들었지만, 인식이 잘 되지 않았어.
취미를 가져보라고.
당신과 함께가 아니라. 혼자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라고.
이상하지.
솔음은 그게 꼭...
혼자서도 살아갈 준비를 하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바쁘면 됐어요."
"솔음아, 오해하지 마. 요즘 정말로 바빠서 그래."
"...네."
최 요원이 조금은 피곤한 목소리로 솔음을 달래.
"바쁜 거 끝나면 하자. 응?"
바쁜 거. 그거 언제 끝나요?
그때쯤이면 나는 없을 텐데.
그때 호출기가 울려.
다녀올게! 대답조차 듣지 않고 달려나가.
청명한 방울소리와 함께 달려나가던, 당신의 뒷모습을. 참 많이 좋아했는데.
'당신은 이제 내가, 성가셔진 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주 조금 우울해졌어.
*
💬 오늘도 늦어요?
솔음은 매일 그렇게 물었어.
다섯 번에 한 번 꼴로 오는 답장이지만.
한 번 오는 답장이나마 소중해서.
이게 아니면 문자를 주고받을 일도 이제는 없으니까.
그 뒤로 세 번 정도 더 피를 토했어.
때때로 심장이나 옆구리 어딘가, 혹은 팔 다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어.
그러나 환상통일 뿐 실제로 어디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까...
진통제를 삼키고 끙끙거리며 버텼어.
미각은 완전히 상실했고, 후각은 많이 둔화되어서. 이제는 코 바로 앞에서 맡는 게 아니면 느끼기 어렵더라.
직접 요리해서 먹는 걸 관뒀어.
소금 설탕도 구분을 못 하는데 요리는 무슨.
밥을 차려놓지 않다 보니 자연히 같이 밥을 먹지도 않게 됐어.
...사실 원래도 그렇긴 했어. 솔음이 꾸역꾸역 최 요원 몫까지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뒀을 뿐.
그렇게 따지자면 그 날도 평범했어.
자고 일어났더니 최 요원이 없었고,
화장실로 기어가 피를 토했으며,
그 상태로 기절한 후 오후에서야 깨어나는 바람에,
피칠갑을 한 상태로 엉망이 된 화장실 청소를 한.
그런 평범한 하루였어.
거울 속에는 눈이 퀭하고 얼굴이 좀 야윈 남자가 서 있었어.
백일몽의 노루 주임도,
재난관리국의 포도 요원도 아닌.
그냥 볼품없이 죽어가는 김솔음이 그 안에 있었어.
저 꼴을 하고도 살고 싶다고.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꼴사납게 발버둥치는 남자가 그 곳에 있었어.
문자를 보냈어.
💬 오늘도 늦어요?